[소강석 목사의 시편] 주께 하듯 사부를 존중하라

입력 2012-07-02 18:35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할 영적 사부가 있다. 그분은 내가 집에서 쫓겨나 광주신학교를 다닐 때 학장이셨던 고 박종삼 목사님이다. 돈이 없어 늘 밥을 굶고 다니던 나를 집으로 불러서 고깃국도 먹여주시고 용돈도 주셨다. 그때 밥을 먹으러 가면 나는 다리를 떨기도 하고 온갖 방정을 다 떨었다. 그러면 사모님은 항상 나를 꾸짖으셨지만 그래도 목사님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품어 주셨다. 훗날 목사님은 미국에 가서도 모금운동을 하면서 돈을 보내 주셨다. 그리고 내가 미국 유학을 갈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하셨다. 심지어 나를 사위로 삼겠다는 의중까지 많이 전하셨다. 그만큼 그분은 그분의 존재 앞에 티끌 같은 나를 신뢰하고 기대하며 사랑해주셨다.

그러나 사모님은 나를 항상 미덥지 않게 여기셨다. 그 때문에 미국 유학도 무산되고 말았다. 물론 나는 그분의 사위가 된다는 것을 생각도 안 했다. 내가 그런 마음까지 먹으면 사모님께도 누가 되고 목사님께도 행여 부담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을 원망한 적도 없었다. 물론 사모님께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세월이 흘러 미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그분이 누워계신 필라델피아의 한 공원묘지에 가서 무릎을 꿇고 방성대곡을 하였다. 내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그렇게 울어보지를 못했다. 왜냐면 그분은 나에게 오늘의 목회자가 되기까지 진정한 사부 역할을 해 주셨기 때문이다.

난 원래 겸손하고 온유하게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종종 오버하기를 잘하고 잘난 척하는 유형의 사람이다. 그런데 그분은 나에게 진정한 겸손과 사랑의 마음을 가르쳐 주었고 모든 사람을 품는 모습을 가르쳐 주셨다. 지금도 부족하기 짝이 없지만 젊은 나이에 큰 사역을 감당하게 된 것도 그분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이후로 미국 동부 쪽을 가면 항상 차로 다섯 시간, 여섯 시간이 걸려도 꽃다발을 들고 그분의 묘지를 찾아간다. 뿐만 아니라 생존하신 사모님을 꼭 찾아갔다. 비록 꾸중을 많이 하시고 나를 인정하지 않으셨던 분이지만 돌아가신 사부님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큰절을 하며 미국에서 받은 사례비를 몽땅 드리고 온다. 사모님 역시 목사님과 한 몸을 이룬 부부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사모님이 눈물을 흘리며 미안해하고 고마워하였지만, 그보다 내 마음이 뿌듯하고 행복해진다.

이런 사실을 아는 우리 교회 장로님들이 한 번은 나를 따라서 사모님을 찾아뵌 적이 있다. 그리고 장로님들은 부족한 나를 천사처럼 섬겨주고 있다. 지금 한국교회는 너무나 영적 사부를 업신여기는 풍조가 있다. 이런 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교회가 소모적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가. 비록 우리의 영적 사부가 부족함이 있다하더라도 그의 가르침과 사랑으로 오늘날 우리가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주님을 존중하듯 영적 사부를 존중하며 섬겨보자. 그럴 때 먼저 내가 행복하게 되고 교회와 교계가 초록빛 행복이 가득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지 않겠는가.

<용인 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