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박정태] 포괄수가제 파동 이후

입력 2012-07-02 19:51


얼마 전 어머니가 한쪽 눈 실핏줄이 터져 병원을 찾았다. ‘빅5’ 병원이었다. 이후 치료와 약 복용으로 어느 정도 나아졌지만 경과는 지켜봐야 한다는 게 병원 측 얘기란다. 그런데 처음 병원을 찾았을 때 실핏줄이 터진 원인이 궁금해 물어보았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그에 대한 설명은 없고 당일 처치와 치료 일정만 간단히 언급할 뿐이어서 답답하기만 했다고 전했다. ‘1시간 대기, 1분 진료’식의 종합병원이니 의사와의 ‘대화’는 애초 기대난망이었을 게다.

의사는 ‘장사꾼’이 아니다

한 대학병원 안과의사와의 저녁 자리에서 이 얘기를 꺼냈다. 그랬더니 그 의사 왈, “실핏줄이 터진 이유는 의사도 모릅니다.” 고혈압, 과로 등 여러 원인을 추정할 순 있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빅5’ 병원에서 “저희로서도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이러저러한 게 원인이 됩니다” 등의 말이라도 친절하게 해줬으면 환자의 답답함이 조금은 풀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거야말로 의료서비스의 질(質)에 해당하는 것이겠다.

최근 대한의사협회가 의료의 질 저하 등을 이유로 반대해 온 포괄수가제를 잠정 수용했다. 개원의사들이 주축이 된 의협이 수술 거부를 외치며 반발해 오다 비판 여론에 직면해 포괄수가제를 수용한 것은 다행스럽다. 하지만 이번 파동을 통해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건 의협의 의도와는 달리 의사집단에 대한 불신이 더 커졌다는 점이다. 국민 건강을 볼모로 밥그릇을 챙기려 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의사가 불신 대상은 아니다. 몽니를 부리는 일부다.

포괄수가제는 ‘입원비 정찰제’다. 진찰료, 검사료 등 진료행위별로 비용을 부담해 온 것(행위별수가제)과 달리 일련의 치료행위를 묶어 정해진 가격을 지불하는 제도다. 행위별수가제에서는 진료행위가 늘어날수록 수입이 많아져 과잉진료가 끊이지 않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 포괄수가제다. 1997년부터 시범·자율 시행을 통해 의료기관의 70%가량이 참여하고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도 이 제도를 운영 중이다.

1일부터 백내장 등 7개 질병군에 대한 포괄수가제가 병의원에서 확대 실시되고 있다. 환자 부담은 평균 21% 줄어든다. 병의원도 수가가 평균 2.7% 인상돼 총액으로는 이익이다.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 ‘윈-윈’ 아닌가. 그럼에도 의협이 내년 폐지를 목표로 포괄수가제 저지 활동을 계속 벌이겠다고 한다. ‘과소, 최소 진료’를 할 수밖에 없어 의료의 질이 저하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일부 일리가 없지는 않을 게다. 하지만 의사는 ‘장사꾼’이 아니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부실 진료’를 하겠다는 건 의사의 직업윤리를 내팽개치는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포괄수가제 자율시행 이후 의료서비스 양은 줄었지만 질은 떨어지지 않았다.

仁術로 불신 씻어내길

포괄수가제 취지는 과잉 의료서비스를 적정 의료서비스로 바꾸자는 것이다. 이를 확대 해석해 국민들도 ‘값 싸고 질 높은’ 서비스를 요구하는 건 무리다. 값이 싼데 질이 높아질 수는 없다. 단지 적정한 서비스의 양과 질, 그리고 적정 가격으로 많은 국민의 의료접근권을 보장하면 된다. 만일 의협 주장대로 의료의 질이 떨어진다면 의료계가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보완책을 마련하는 게 순리다. 제도 정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자세라면 정부도 의료계 의견을 배척할 이유가 없다.

포괄수가제 확대와 상관없이 대부분의 의사들은 양심과 소신에 따라 최선의 진료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 양심대로라면 상술보다는 인술이 우선하지 않겠는가. 사실 환자들이 기대하는 의료서비스의 질은 거창한 게 아니다. 어머니의 사례에서 보듯 의학 전문지식이 부족한 환자와 가족의 마음을 헤아리고 의사들이 ‘친절한 소통’을 하는 게 첫걸음일 것이다.

박정태 문화생활부장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