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白磁의 사람

입력 2012-07-02 18:21

“거리에 나가면 예쁜 옷을 입은 아이들의 환한 얼굴을 만난다. 조선어린이들의 아름다움은 각별하다. 신비롭다고나 할까. 왠지 모르게 오늘은 조선의 천하(天下)라는 느낌이다. 예쁜 천사 같은 이 사람들의 행복을 우리가 방해하는 것이라면 하나님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조선의 산과 민예(民藝)를 사랑한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 1891∼1931)가 1922년 1월 28일 설날에 쓴 일기의 한 대목이다. 이어 그는 “내 마음에 조선민족은 축복받은 민족이라고 명료하게 비친다”고 썼다.

12일 개봉을 앞두고 지난주 열린 한·일 합작영화 ‘백자(白磁)의 사람-조선의 흙이 되다’ 시사회에 다녀왔다. 영화는 에미야 다카유키의 동명 실화소설(박종균 역, ‘백자의 나라에 살다’)을 바탕으로 조선백자를 비롯한 한국의 전통 공예품과 조선인에 대한 다쿠미의 사랑을 그렸다.

조선의 민예를 존중하고 사랑한 다쿠미, 식민지 지배자의 얼굴이 아니라 피지배자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눈물 흘리는 사람, 바지저고리를 입고 한국말을 구사하는 서민적인 그의 면모를 영화는 잘 보여준다. 그런데도 뭔가 매끄럽지 않은 이유는 뭘까.

사실과 다른 몇몇 영화적인 허구 때문은 분명 아니다. 영화에 다쿠미가 왜 그토록 이 땅의 사람들을 사랑했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는 앞서 인용한 일기에서 엿보이는 다쿠미의 인류애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말하고 있지 않다.

그는 일본 야마나시(山梨)현립농림학교에 재학 중이던 1907년 고후(甲府)감리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평생을 기독교인으로 살았다. 그런데 다쿠미는 교회 안에서만 예배하며 사랑하고 교제하는 신자가 아니라 일상에서, 삶의 현장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영화는 다쿠미의 조선·조선인 사랑을 하나님의 사람의 참모습으로 소개하고 있지 않지만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영화의 맛은 훨씬 배가될 것이다. 다쿠미에 대해서는 본란에서 이미 소개(1998년 8월 31일자, 2004년 9월 30일자)했지만 그는 다시 거론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다.

1914년부터 총독부 농상공부 삼림과(현 임업시험장) 기사로 재직하면서 이 땅의 산을 푸르게 하는데 힘을 쏟았고, 조선 민예의 위대함을 알리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는 짧은 생을 마친 후에도 이 땅을 잊을 수 없어 떠나지 못했다. 서울 망우추모공원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