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농구 앙카라 대참사 ‘예고된 인재’… 올림픽 예선 일본전 28점차 치욕패
입력 2012-07-01 19:09
1일 새벽(한국시간) 터키 앙카라에서 열린 한국과 일본의 2012 런던 올림픽 여자농구 최종예선 패자 준결승전(5∼8위전). 1쿼터가 끝났을 때 전광판에 새겨진 스코어는 4-29였다. 전광판이 고장 난 게 아니었다. 승부는 사실상 여기서 끝. 2, 3, 4쿼터는 한국 여자농구에겐 망신살만 뻗친 무의미한 시간이었다.
한국 여자농구 국가대표팀이 졸전 끝에 일본에 51대 79로 참패했다. 올림픽 5회 연속 진출도 좌절됐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 20년 만에 올림픽 구경꾼 신세가 된 것이다.
예고된 참사였다. 한국 선수들은 이날 막연한 자신감만 가지고 코트에 나섰다. 최근 일본과의 국제대회 6경기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았으니 그럴 만했다. 그러나 일본은 만반의 준비를 했다. 정해일 감독을 코치로 임명하기까지 했다.
한국 대표팀은 이번 대회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우선 지난 4월 감독 선임 과정에서 잡음이 일었다. 대한농구협회는 여자프로농구 6연패를 이끈 임달식 신한은행 감독 대신 삼성생명 이호근 감독을 사령탑에 앉혔다. 그동안 리그 우승팀 감독에게 대표팀 지휘봉을 맡겨 온 관례를 깬 것. 이 과정에서 특정 세력의 개인적인 감정이 개입됐다는 설이 흘러나왔다.
선수 선발 과정도 엉망이었다. 선수들 몸 상태를 제대로 체크하지도 않았다. 어깨 부상으로 재활 중이던 이경은과 갑상선 종양 진단을 받은 김단비를 뽑았다. 결국 둘은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재활 중인 하은주는 단 1분도 뛰지 못했다. 또 하은주, 강영숙, 이연화, 최윤아 등 신한은행 소속 선수는 4명이나 선발됐지만 이호근 감독의 삼성생명 소속 선수는 한 명도 선발되지 않은 점도 석연찮다.
신세계 해체도 악재로 작용했다. 팀이 와해되는 아픔을 안고 대회에 참가한 주장 김지윤과 ‘주포’ 김정은은 코트에서 특유의 악바리 근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3∼4위전 이후 5년6개월 만에 일본에 패한 이번 ‘앙카라 참사’로 한국 여자농구의 부끄러운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제 협회, 여자프로농구연맹, 구단들이 한마음으로 이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할 때이다. 이옥자 구리 KDB생명 감독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젊은 선수들이 정신 차리고 준비하면 앞으로 재도약할 저력은 있다”고 희망을 끈을 놓지 않았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