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지방] 반창고가 필요해
입력 2012-07-01 18:50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애타게 사라진다.”
‘나는 가수다2’에서 한영애씨가 이 노래를 불렀다. 사랑 노래지만, 상처난 마음에 붙이는 반창고 같은 노래로 들렸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지난주 북아일랜드에서 아일랜드공화국군(IRA) 사령관이었던 인물과 악수를 나눴다. 알다시피 IRA와 영국 왕실은 종교 갈등과 독립 요구로 서로 총을 쏘고 폭탄을 터트린 사이다. 서로가 피해자였고 가해자였다. 악수 한번 했다고 당장 화해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상처가 덧나지 않게 붙이는 반창고는 되지 않았을까 싶다.
프랑스를 방문한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의 행동은 더욱 대담했다. 15년간 집안에 갇혀 정치활동을 금지 당했던 수치 여사는 “군부에 원한이 없다. 민주화 이행을 위해 군부와 협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미움과 증오의 마음으로는) 국가적 화합을 이룰 수 없다”면서 “이제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수치 여사가 이대로 실천한다면 이건 타박상 연고쯤 될 수 있겠다.
세계의 모든 지도자는 아웅산 수치와 영국 여왕의 행동을 눈여겨 봐야 한다. 한영애씨의 노래를 스마트폰에 저장하고 매일 들어야 한다. 지금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역사와의 화해, 혹은 상처에 반창고 붙이기일 것이다.
사실 인류는 지금 역사상 최고의 절정기에 있다. 인류가 이룬 모든 것을 손바닥 안에(구글 안경은 수정체 1㎝ 앞에) 불러낸 사이버네틱 혁명, 여름엔 캘리포니아 오렌지를 먹고 겨울엔 칠레 포도를 먹게 만든 세계화와 물류 혁명, 세계관과 신앙마저 마트의 아이스크림처럼 부담 없이 골라잡게 하는 포스트모더니즘 혁명은 인류에게 낙관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이 모든 혁명 속에서 우리는 바뀌지 않은 것을 더욱 분명하게 경험하고 있다. 20세기의 언어 같은 독재·인종차별·이념갈등에다 부익부빈익빈의 세계적 현상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진실과 화해 위원회’ 같은 조직을 운영했지만, 금전적 보상은 이뤄졌어도 사회적 청산과 치유는 미흡했다. 시리아의 내전을 보라. 월스트리트의 점령 시위, 중동의 재스민 혁명, 방콕 시내를 전쟁터로 만들었던 레드셔츠의 저항은 어떤가. 풍요의 혁명도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했고, 더구나 행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어떤 면에선 선진국들은 더 불행할지도 모르겠다. 세계화는 경제 발전도 가져다주었지만 지구촌 구석에 숨겨 놓고 외면했던 사실도 눈앞에 보여줬다.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이라는 장하준 옥스퍼드대 교수의 책을 읽지 않더라도 자신들이 누리는 물질적 풍요가 과거의 식민주의나 냉전, 현재의 불평등한 무역 구조 덕분에 가능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이 장물이었다니! 세계의 정신을 이끄는 듯했던 그들이 도덕적 정당성을 잃고 당황해한다. 그렇다고 할리우드 영화처럼 역사를 ‘리부트’하거나 ‘리턴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 모두가 피해자 아니면 가해자라니. ‘세상은 어제와 같은데 나만 홀로 달라져 있다’는 한영애씨의 읊조림이, 세상이 다 행복한 것 같은데 우리는 더 불행해졌다는 고백처럼 들린다. 풍요롭기에 더 절망하는 인류에게 누군가 반창고라도 붙여줘야 한다. 그런 사람이라야 이 시대 지도자의 자격이 있다.
김지방 국제부 차장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