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안주연] “고맙습니다”

입력 2012-07-01 18:51


내가 사는 한 동짜리 아파트의 주민들은 모두들 일찍 귀가한다. 그래서 수위 아저씨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현관문을 잠그고, 가끔 조각잠을 주무시는 것을 본다. 늦을 때 벨을 눌러 아저씨를 깨워야 할 때가 있는데, 문을 열어주는 아저씨의 피곤한 얼굴과 마주쳤을 때 좀 난감함을 느낀다.

나는 아저씨의 단잠을 깨운 것에 미안해 한다. 그러나 ‘내가 늦은 것이 죄송할 짓인가?’ ‘수위 아저씨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등 사소한 시비를 가리느라 머리가 복잡해진다.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미안합니다”라고 하면서 아저씨 앞을 슬쩍 지나치거나, 더러는 본척만척 한다.

‘미안하다’와 ‘고맙다’는 종종 같은 상황을 표현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고마움을 느낄 때 우리는 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내 짐을 들어주면 외국인은 ‘들어줘서 고맙다’라고 하지만 우리는 ‘힘들게 짐을 들게 해서 미안해’라고 한다. 같은 상황에서 쓰는 같은 말이 될 수 있다면 ‘고맙다’가 ‘미안하다’보다 편하지 않을까?

며칠 후 또 아저씨를 깨웠다. 여전히 졸린 얼굴이다. 다시 문을 닫기 위해 심드렁한 표정으로 기다린다. 내가 “고맙습니다”라고 하자 아저씨가 내 쪽을 돌아본다. 밝은 표정이다. 내 목소리도 더 커지고 당당하다.

이토록 좋은 말을 왜 진작 쓰지 않았을까? “미안합니다”란 말은 한쪽은 숙이게 되고 반대편은 “그래. 왜 미안할 짓을 했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런데 “고맙습니다”는 모두가 기분 좋아진다. 서로를 인정하고 칭찬받는 것 때문이다.

호텔에서 기본적으로 받는 교육 중 하나가 전화 예절이다. “안녕하십니까. OO부의 ***입니다”로 시작해 “감사합니다”로 마무리한다. 모니터링 전화로 부서별 점수를 매겨 게시판에 붙이기도 한다. 덕분에 슈퍼에 배달시킬 때도, 잘못 걸린 전화에도 엉뚱하게 ‘감사’를 표시한다.

늦은 밤 문 열어주기 위해 일부러 일어난 수위 아저씨도 고맙고, 알아서 빠른 길로 가주는 택시 아저씨도 고맙고, 나와 생사고락을 같이하고 있는 동료들도 고맙다. 오늘도 내게 고마운 이들을 꼽아보고 다시 한번 마음을 표현하려고 한다. “고맙습니다.”

안주연(웨스틴조선 호텔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