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일 군사정보협정, 냉정하게 국익 따질 때
입력 2012-07-01 18:47
외교결례 책임 묻되 정치 공세 자제해야
북한에 관한 군사정보 등을 일본과 교환하려는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이 지난 29일 전격 연기됐다. 정부가 여당의 요청을 받아들여 서명식을 50분 앞두고 체결을 보류하는 초유의 외교 결례를 감수한 끝에 이 문제는 국회 협의를 거치게 됐다.
이번 협정은 내용보다 절차 문제에서 큰 논란을 빚어 왔다. 핵이나 미사일 등과 관련한 대북 정보를 한·일 양국이 교환해 정보풀을 늘리겠다는 취지는 북한의 점증하는 위협에 비춰 타당성이 있었다. 비록 과거사 반성에 인색한 태도를 취하며 군사력 증강을 꾀하는 일본에 맞장구를 쳐주는 격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과거사와 안보 문제를 구별해야 한다는 정부 논리도 설득력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협정 무산에까지 이른 일련의 과정은 아마추어적 행태였다.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인 지난달 26일 국무회의에 긴급 안건으로 상정해 통과시켰다. ‘밀실 꼼수 처리’라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정부는 절차가 이미 진행 중이라며 서명을 강행하다가 막판에야 일본 측에 유예를 통보했다.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런 촌극의 과정을 낱낱이 밝히고 관련자에겐 책임을 물어야 한다.
민주통합당 이해찬 대표는 이번 파문과 관련해 김황식 총리의 해임을 요구했고, 국회에서 불신임 결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번 사안이 국회 동의가 필요한지를 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우왕좌왕한 것은 맞지만, 그간 러시아 등 24개국과 맺은 정보교류 협정도 국회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 오랫동안 표류한 국회 개원 협상에도 책임이 없지 않다. 그런데도 총리 해임과 불신임까지 들고 나선 것은 정치공세 성격이 짙다. 대통령 선거를 겨냥해 정치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야당 일각에서는 분쟁 상대국인 일본과의 협정은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하지만 헌법 60조에는 국회가 비준동의권을 갖는 조약을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입법이 필요한 조약 등으로 적시하고 있다. 국회 비준동의권을 지나치게 확대하는 것은 헌법질서를 흩트리는 것이다. 행정부가 소신에 따라 자율적으로 조약을 체결하는 것을 방해한다. 소소한 협정까지 국회가 간여하게 되면 반드시 필요한 협정도 체결이 지연·취소되는 일이 다반사가 될 우려가 있다.
정부에서 외교 결례까지 감수하며 국회 협의 절차를 밟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만큼 이제 절차 문제를 빌미로 한 정치공세는 지양하고, 내용을 충실히 따질 때다. 일본이 보유한 대북 정보의 가치가 얼마나 높으며 왜 지금 반드시 필요한가 등에 대한 논의를 충분히 해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냉정하게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일부에선 한·미·일 위주 외교에서 벗어나야 한다거나 북한과의 갈등 고착화를 이유로 반대론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어설픈 외교 전망이나 종북주의적 논리로 전통적 우의관계와 외교기조를 훼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