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올림픽] 복싱까지 여성이… 런던서 드디어 ‘양성평등’ 이뤘다

입력 2012-07-01 18:14


여성들의 올림픽 참가 투쟁사

2012 런던올림픽은 근대 올림픽이 개최된 지 116년 만에 양성평등을 완성한 올림픽으로 기억될 전망이다. 여자 복싱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승인됨에 따라 이번 대회는 전체 26개 종목에 남녀 모두 참가하는 첫 번째 올림픽이 됐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까지 여자 선수의 올림픽 참가를 금지했던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브루나이 세 나라도 이번 대회에 처음으로 여자 선수를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여성들의 험난했던 올림픽 참가 투쟁사를 짚어본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올림픽에는 남자 선수들만 출전했다. 여자들의 경우 일부에게 관람은 허용됐지만 출전은 불가능했다. 기원전 396년 스파르타의 시니스카 공주가 전차 종목에서 두 차례 우승했지만 말의 소유주였을 뿐 직접 출전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전차 경기는 말의 소유주에게 우승이 주어졌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매우 센세이셔널한 것이어서 그리스 전역에 알려졌다.

고대 올림픽의 전통은 근대에도 이어져 제1회 아테네올림픽에서도 여성의 참여는 금지됐다. 14개국 참가 선수단 311명(선수 241명)은 모두 남성이었다. 당시 ‘멜포메네’라는 이름의 여성이 올림픽 마라톤에 참가 신청을 했지만 조직위는 등록을 거부했다. 그러자 멜포메네는 대회 당일 남자 선수들과 떨어진 곳에서 몸을 푼 뒤 코스의 가장자리를 달렸다. 그녀는 당시 우승자보다 1시간 반쯤 늦긴 했지만 완주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조직위로부터 등록이 거부된 만큼 스타디움 안엔 들어갈 수 없었다.

1900년 제2회 파리올림픽에서는 테니스와 골프에 여자 선수 22명이 처음으로 참가한 이후 여성에 대한 올림픽의 장벽은 천천히 낮아졌다. 1904년 제3회 세인트루이스올림픽에서 양궁이 추가됐고, 1912년 제5회 스톡홀름올림픽에서 수영이 포함됐다. 하지만 그 속도는 너무 느렸다. 여자육상이 올림픽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28년 제9회 암스테르담 대회였는데, 그나마 여자에게 허용된 가장 긴 종목은 800m 경주였다. 1984년 제23회 LA올림픽 때까지는 여자 마라톤도 없었다.

여성이 근대 올림픽 초창기에 소외된 것은 창시자인 피에르 쿠베르텡을 비롯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지도자들이 여성의 올림픽 참여를 탐탁치 않아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여성의 스포츠 활동이 여성적 매력을 파괴시키고 스포츠를 격하시킨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쿠베르텡은 “올림픽은 남자들에게 어울리는 것”이라면서 “여자의 역할은 고대 올림픽에서처럼 승리자에게 왕관을 씌우는 일”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1937년 그가 세상을 뜬 뒤에도 올림픽의 여성 차별은 계속됐다. 1952년부터 20년간 IOC 위원장을 맡았던 애버리 브런디지는 “여자들은 수영, 테니스, 피겨스케이팅, 펜싱 등 여성에게 어울리는 운동만 해야 한다”면서 여성들의 올림픽 참가를 막았다. 이와 관련해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로 대표되는 올림픽 정신도 생리적으로 다른 남녀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는 여성계의 지적도 있다.

1960∼1970년대 거센 여성 운동의 물결은 스포츠 분야에도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1972년 미국에서 제정된 ‘타이틀9(Title IX)’은 스포츠를 포함해 모든 교육 영역에서 여성들에게 남성들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으로 미국에서 여성들의 스포츠 참가에 불을 붙였다. 이어 1975년 유럽 스포츠 각료회의의 ‘Sports for All’ 헌장에 이어 1978년 UN 유네스코 총회의 ‘체육 및 스포츠에 관한 국제 헌장’이 채택되면서 모든 인간이 스포츠의 기회에 대한 기본적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명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여자 선수들의 올림픽 참가도 빠르게 늘었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여자 선수의 비율이 10.5%로 10%를 넘어섰으며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20.7%로 20%를 넘어섰다. 그리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34.0%,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38.2%, 2004년 아테네 올림픽 40.7%, 2008년 베이징 올림픽 39.9%를 기록했다.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는 아직 참가선수의 최종 숫자가 나오진 않았지만 여성의 비율이 50%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림픽 종목의 경우도 그동안 여자 선수의 참가를 불허하던 레슬링이 2004년 아테네 대회부터, 복싱이 2012년 런던 대회부터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모든 종목에서 남녀 평등이 이뤄졌다. 이와 관련해 2008년 대회를 끝으로 올림픽 종목에서 탈락한 야구는 여자 종목인 소프트볼을 파트너로 2020년 올림픽에 재진입을 타진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올림픽 정신이 추구하는 남녀평등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방편으로 두 종목의 국제기구가 하나의 연맹으로 통합하기로 뜻을 모은 상태다.

‘여성 스포츠와 페미니즘의 의미 있는 평등 실현과 참다운 스포츠 본질을 위하여’라는 논문을 쓴 이인숙 전 이화여대 교수는 “이번 런던 올림픽이 종목과 선수 부문에서 양성평등을 상당히 이뤄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면서도 “하지만 IOC 위원회를 보면 아직도 여성의 비율이 미미하기 때문에 올림픽에서 진정한 의미의 양성평등이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재 IOC위원 115명(명예위원 제외) 가운데 단지 16%만이 여성위원이며 의사 결정권이 있는 IOC 집행위원회 15명 가운데에선 단 2명만이 여성이다. 그리고 IOC의 운영을 맡고 있는 사무국의 고위 간부 가운데 여성은 단 1명도 없다. IOC뿐만 아니라 다른 국제스포츠기구에서 의사 결정권이 있는 여성의 비율은 미미하다.

이와 함께 양성평등의 이면에 있는 여성의 성 상품화도 간과할 수 없다. 테니스와 탁구 같은 종목에서 여자 선수들이 미니스커트를 입어야만 하는 규정은 남성 중심주의가 여전히 스포츠에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