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케어’ 합헌 판결 이후… 찬성표 로버츠 대법원장 “중용 지혜 보였다” 재평가

입력 2012-06-29 19:11

28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최고 화제의 인물은 단연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이었다. NPR·CNN 등 방송은 물론 주요 신문들도 인터넷을 통해 밤늦게까지 반복해서 연방대법원의 건강보험개혁법 합헌 판결을 톱뉴스로 다뤘다. 언론들은 보수파로 분류돼 온 로버츠 대법원장의 예상 못한 노선 변경을 빠짐없이 언급했다. NPR 뉴스가 전한 대로 이번 판결은 어느 법학자도, 정치 분석가도 예상하지 못한 깜짝쇼였다.

2005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임명한 로버츠 대법원장은 대법관의 이념 성향에 따라 5대 4로 결과가 갈린 30여건의 판결에서 항상 보수 측의 일원으로 가담했다. 그가 결과를 뒤집는 캐스팅보트를 행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진보 진영을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그는 순수한 법리보다는 보수적 정치관을 앞세워 연방대법원을 보수화하려는 의도를 가진 대법원장으로 의심받곤 했다.

이번 오바마케어 합헌 판결은 그와 연방대법원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버드법학대학원에서 그를 가르쳤던 로렌스 트라이버 교수는 “나는 그가 대법원장에 취임할 때부터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념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실용과 중용을 취하는 지혜를 보여줬다는 평가도 나온다. 현직 대통령의 핵심 정책을 폐기시키거나 아니면 연방권력의 무제한 사용을 허용하는 두 극단을 ‘건강보험료 부과가 연방정부의 고유 권한인 조세 징수와 같은 성격으로 볼 수 있다’는 탁월한 논리로 피해가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어윈 체머린스키 캘리포니아주립대 어바인캠퍼스 법학대학원장은 “로버츠 대법원장은 이번 판결로 단순한 보수 진영의 일원 이상임을 보여줬다”며 “지금의 연방대법원은 이제 로버츠의 대법원”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말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이 평소 자신의 보수주의적 세계관과 미국의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높이려는 목표 사이에서 조화를 추구하겠다는 발언을 해 온 점도 많은 법학자들이 주목했다.

보수 진영은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배신자” “부시 대통령이 그를 임명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