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보보호협정 보류] 박근혜의 힘?… 정부, 與 압박 75분만에 ‘굴복’

입력 2012-06-29 21:48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의 전화 한 통이 29일 한·일 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을 보류시켰다. ‘미래 권력’인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친박근혜계가 장악한 집권여당의 힘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새누리당 분위기는 오전부터 심상치 않았다. 오전 9시 국회에서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서는 한·일 정보보호협정의 ‘밀실 처리’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정부가 집권여당 지도부에도 협정의 구체적 내용이나 득실을 보고하지 않았다며 성토가 이어졌다.

김을동 원내부대표는 “정부가 국회 공전 상태를 틈타 국무회의에서 비밀리에 처리할 일이 아니다”면서 “당 지도부도 당과 국회를 무시한 정부 처사에 강력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대출 의원은 “협정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이렇게 졸속 처리해서 절차적 정당성을 잃어버리면 그 후유증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독도 영유권,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국민들의 대일 감정이 좋지 않은 상황임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잇따랐다.

비공개 회의에서는 정보보호협정의 졸속 처리가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고 한다. 여전히 천안함 피격에 관한 정부 조사 결과를 믿지 않거나, 제주 해군기지에 반대하는 세력 등에게 또 다시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대책을 논의하던 중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냈던 김종훈 의원이 “서명이 되면 즉시 발효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서명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내면서 분위기가 긴박해졌다. 시간이 없다고 판단 한 이 원내대표와 진영 정책위의장은 김황식 국무총리에게 연락해 협정 체결 보류와 유예를 공식 요구키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김 총리와 연락이 닿지 않자 오후 2시 이 원내대표가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조목조목 보류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로부터 25분 뒤 진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의 협정 추진 과정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공식 체결 보류를 요청한 사실을 언론에 전격 공개했다. 정부가 강행하지 못하도록 공개적으로 압박에 들어간 셈이다. 결국 이 원내대표가 전화를 건 지 1시간15분 만에 외교부 대변인은 “일본과 서명 연기를 조율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번 사안을 놓고 박 전 위원장은 공식 발언을 내놓지 않았다. 이 원내대표나 진 정책위의장은 “박 전 위원장으로부터 입장을 전해들은 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친박계가 잡고 있는 당 지도부의 신속한 대응에 박 전 위원장이 영향을 줬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전날까지만 해도 대변인 논평을 통해 협정 체결과 국민 정서의 분리 대응을 주문하고, 일부 국방위원이 나서서 협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가 하루 만에 돌변했기 때문이다. 당 일각에선 협정 체결을 보류시킨 것은 잘한 일이지만 당이 보다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한 것은 문제라는 비판 목소리도 나온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