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호소했지만 사측은 묵살, 결국 죽음으로… 공황장애 지하철 기관사 ‘무언의 절규’
입력 2012-06-30 00:41
지난 3월 12일 서울 지하철 5호선 왕십리역. 승강장에 서 있던 서울도시철도공사 소속 기관사 이모(43)씨가 스크린도어를 열고 진입 중인 열차에 몸을 던졌다. 이씨는 업무 스트레스로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다. 운전하는 것이 두려워 지난해 8월에는 차까지 팔았다. 이씨는 회사에 사무직으로 전직을 시켜 달라고 요청했지만 묵살됐고 결국 죽음을 택했다.
지난 23일 서울 구로동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코레일 소속 기관사 최모(46)씨는 지난 1월 오산대역 정지위치 어김 사고로 2개월 직위해제와 감봉 3개월 등의 징계를 받았다. 당시 스트레스로 공황장애가 생겨 약물치료를 받았다. 최씨도 회사에 전직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들 외에도 기관사들 상당수가 정신질환을 호소해왔다.
2007년 도시철도공사 기관사 836명을 대상으로 한 특별검진 결과, 기관사의 공황장애, 우울증 유병률은 일반인보다 각각 7배, 2배나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도시철도공사 기관사들이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이유는 2명씩 짝을 지어 일하는 서울메트로 소속 기관사와 달리 혼자 지하철 운전과 안내방송, 민원을 모두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도시철도공사는 2007년 특별검진 이후 5년간 기관사의 정신건강을 파악하기 위한 정기검진이나 추가 조치 등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적 문제를 호소하는 기관사들을 퇴출 대상자로 내몰았다. 기관사들도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앓은 사실이 알려지면 오히려 인사상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숨기기에 급급했다.
윤승훈(42) 도시철도공사노조 선전홍보국장은 “기관사들이 회사에 정신적 문제를 알리면 당사자들은 오히려 ‘승무부적격자’로 낙인찍혀 퇴출당할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며 “이 때문에 일부 기관사들은 극도의 정신적 고통을 겪으면서도 이를 숨기려 한다”고 말했다.
지영근(54) 철도노조조직강화특위 팀장은 “최씨처럼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은 코레일 입장에서는 감축 대상일 뿐”이라며 “사측의 이런 태도 때문에 정신적 피해를 입은 기관사들이 산업재해 신청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지 팀장은 “사측은 기관사에 정신건강 문제가 생길 경우 해당 기관사를 내보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강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철도공사는 2009년 5115명 감축안을 확정하고 매년 정기적으로 시행해 현재까지 3502명을 감축했다. 감축대상은 아직 1613명 남았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뒤늦게 감지한 서울시는 29일 도시철도공사 소속 기관사들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조사에 착수했다. 다음 달 8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조사에서 서울시는 도시철도공사 소속 직원들의 직무스트레스, 개인 정신심리상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진단하고 개선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그러나 그동안 기관사들의 정신건강 검진을 한 차례도 실시하지 않았던 코레일은 앞으로도 검진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