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자나무왕, 제 몸 가시 제거한 숨은 뜻은…

입력 2012-06-29 18:14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현길언(72)의 신작 장편 ‘숲의 왕국’(물레)은 정치의 계절에 읽는 우화이자 우리 정치 현실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원 노인은 숲이 왕을 세우기로 결정했다는 말을 목 상무로부터 들었을 때 황당하면서도 한편 흥미롭기도 했다. 60여 년 전 생애를 바쳐 쓸모없는 돌산을 숲으로 만들어놓았는데, 이제 자기네끼리 왕을 세워 다스리겠다는 것이다.”(13쪽)

한국전쟁 때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고 귀향해 고향 민둥산에 나무를 심고 숲을 조성한 원 노인에게 숲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 그러니만큼 나무들이 왕을 세우기로 했다는 말을 들은 그는 과연 어떤 나무가 주동을 했고 어떤 나무가 왕이 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 장면은 숲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전환된다. 숲에 사는 몇몇 나무들은 숲을 드나드는 인간과 동물의 행태에 불만을 품고 자신들의 왕을 세우기로 한다. 숲에도 강자와 약자가 있다. 윤노리나무, 호랑가시나무, 예덕나무가 약자라면 밤나무, 잣밤나무, 벚나무는 강자에 해당한다. 약자들은 강자들을 찾아가 왕이 되어달라고 하지만 강자들은 그 요청을 거절한다. 왕을 옹립해 놓고 권력 부스러기라도 좀 떨어지지 않을까, 기대하는 약자들의 얄팍한 계산을 간파한 것이다.

하지만 억센 가시만 무성한 탱자나무는 야심에 가득 차서 왕위를 수락하며 이렇게 선언한다. “이제부터 내 허락 없이는 이 숲을 함부로 출입할 수 없소. 이미 내 부하들이 이 숲에 울타리를 만들어놓았소. 앞으로 사람이나 오소리나 노루나 멧돼지나 하늘을 나는 새도 이 숲으로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오.”(61쪽)

탱자나무 왕은 폭압 통치를 하고 윤노리나무, 호랑가시나무, 예덕나무는 권력의 단맛을 누린다. 바로 이 지점, 즉 ‘왕을 옹립한 나무들의 말과 행위는 사람들의 그것과 닮아 있다’는 것이야말로 작가가 들려주고 싶은 핵심이다. 여기에 원 노인의 아들이자 정치가인 원 의원이 개입하면서 나무의 정치는 사람의 정치와 절묘하게 겹친다. 나무의 서열 관계를 따지던 원 의원을 향해 그의 보좌관이 별 뜻 없이 중얼거리는 독백은 작가의 의중을 여실히 반영한다. “이 숲도 이제는 왕국이 되었다는데, 참 우리나라는 특별하지요. 모든 사람이 정치적 관심이 상당한데, 숲에도 그 바람이 불어서 나무들도 정치적으로 노는가 봅니다.”(107쪽)

숲의 정치는 곧 위기에 봉착한다. 숲의 왕이 왕국의 권위를 세우려고 시냇물을 막자 때마침 쏟아진 폭우로 인해 물길이 막힌 숲은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 숲의 정치도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의 정치를 닮아 가는 것이다. 소설의 윤리는 이 지점에서 다시 작동한다. 그 윤리란 나무들의 반란을 묵묵히 지켜보기만 하는 원 노인의 숲에 대한 절대적 사랑과 믿음이다. 그는 숲의 수종을 바꾸어버리자는 아들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여 이렇게 말한다. “숲은 숲이다. 사람을 위한 숲이 아니다. 내가 60년 동안 숲을 가꾸면서 배운 것이 바로 그것이다.”(248쪽)

소설은 탱자나무 왕을 비롯한 숲 속의 나무들이 서로의 몸을 껴안고 가시를 제거하는 고통을 통해 숲의 평화를 회복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작가는 “정치권력이 비민주화되는 과정을 은유하고 있는 구약성경 사사기 속 ‘가시나무 이야기’가 소설의 창작동기”라고 말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