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의 현대시 산책 감각의 연금술] (21) 병(病)이라는 경보장치가 울린 시(詩)… 시인 박진성

입력 2012-06-29 18:14


현대인의 정신질환에 대한 응전의 방식

‘병’이라는 울타리 부수는 치유의 언어


박진성(34) 시인에 따르면 ‘공황장애’는 자동차 도난경보장치와 같다.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의 공에 맞거나 지나가는 사람이 건드리기만 해도 실제 도둑이 차문을 뜯기라도 한 것처럼 요란하게 울어대는 경보센서가 그것이다. 공황장애환자로부터 울려오는 경보음은 두려움과 공포로 인한 호흡곤란, 발작, 자해이다. 공황장애가 박진성을 찾아온 것은 고등학교 3학년 진학을 앞둔 1996년 2월이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아무런 이유 없이 쓰러져 입원을 했고 어머니는 울었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어서 병원 신세를 졌음에도 이듬해 고려대 서양사학과에 진학하지만 병이 악화되는 바람에 1학년 1학기만 마치고 휴학한 후 대전 집으로 내려갔다. 집 근처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가운데 이성복과 기형도 시집도 있었다. 시집을 읽으면서 그는 자신의 증세와 비슷한 불안과 공포와 소멸의 징후들을 발견하고 문학으로 급격히 기운다. 그 겨울까지 200권 이상의 시집을 읽고 이듬해 복학했을 때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에 국문과 수업을 듣고 문예반에서 활동한다.

자신의 병에 대해서도 공부한다. 권력이나 지식이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 짓는 경계선을 설정하고 여기에서 벗어나는 사상이나 행동들을 억압하고 있다고 말하는 ‘광기의 역사’의 저자 미셸 푸코를 알게 됐고 한쪽 귀를 잘라버린 고흐의 광기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푸코와 고흐 사이에서 그는 아픈 것들이 내뿜는 환한 빛을 느낄 수 있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신경증의 울분, 그 울분의 폭발과 발작을 언어로 끄집어내 그는 2001년 등단한다. 그의 초기 시들은 뜨겁다. 뜨거움은 병 체험에서 왔다.

“응급실에 누워 달을 보네 어떤 검사도 병(病)의 속까지 닿을 수는 없네 팽팽하게 당겨진 신경선 위에서 어머니 울고 있네 동서울병원 응급실에 누워 어머니 자궁 같은 보름달을 보네// 나는 나쁜 피가 터져 나오는 혈관, 자라지 말아야 할 나무 어머니 나무들은 그래서 봄이 오면 비명 소리 내지르는 건가요 물관 흐르는 물은 언제쯤 가지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요 어떻게 나무들은 예쁜 상처를 갖게 되는 걸까요”(‘나쁜 피-응급실’ 부분)

우리 사회에서 정신병은 여전히 금기의 대상이고 멸시와 기피의 대상이다. 그래서 그는 더 드러내고자 했다. 병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씻고 싶었고, 환자와 의사 간의 권력관계를 해체하고 싶었다. 병은 싸워 이겨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동반자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2002년 8월 대학을 졸업한 그는 서울과 대전, 대학원 진학과 취업 사이에서 고심하다가 대전행을 택했다. 자신을 추락 직전에 살려낸 시의 운명을 따라 전업시인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대전에 집필실을 마련한 그는 두 권의 시집을 내면서 홍역을 치른 것처럼 홀가분해졌고 병세도 경미한 우울증 정도로 호전됐다. 하지만 2009∼2010년엔 시를 놓아버렸다. 이른바 ‘병시(病詩)’를 자기복제식으로 뽑아내는 게 마뜩지 않았다. 2년여의 공백을 두고 그는 다시 돌아왔다. 요즘 발표한 시들은 자신을 향했던 예전의 화살표를 세상의 사람들에게 돌리고 있다.

“그래 그날 풀밭에/ 네가 귀를 잘라두고 간/ 그날부터였어// 호주머니에 네 귀를 넣고/ 기차를 타고 해변에 다다를 때까지/ 모든 소리가 호주머니로 기어들어왔지// 밀랍으로 만든 귀마개를/ 네 귀에 채워두었는데/ 밀랍은 녹고 네 귀가 자라기 시작했어// (중략)/ 모든 사물은 귀에서 쏟아지고/ 새로 배치된 것들은/ 소리들을 뱉으며 앓기 시작했지”(‘이명’ 부분)

우리 문학이 방기한 정신병적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박진성의 질환적 증후군에 우리도 예외일 수 없다. 그래서 “모두가 미쳐 있는 상태에서 모두가 맨 정신으로 버텨야 하는 상태, 이것이 지금의 젊은 시인들이 지고 있는 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그의 시엔 시대적 진정성이 깃들어 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