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만삭부인 살해사건’ 미궁속으로… 대법 “객관적 증거 없어” 파기 환송
입력 2012-06-28 22:09
만삭부인 살해 사건이 또다시 미궁에 빠졌다. 대법원이 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의사 백모(32)씨를 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원심을 뒤집고 사실상 무죄로 판단했다.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28일 백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백씨가 사건 당일과 이후 상당히 의심스러운 태도와 행적을 보이고 여러 의문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객관적 증거와 치밀한 논증의 뒷받침 없이 살인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 사망 원인을 백씨가 목조른 행위라고 인정하려면 ‘손에 의한 목눌림 질식사’에서만 발생되는 소견이 확인돼야 하지만 사체에서 발견된 출혈 등으로는 이를 단정할 수 없다”며 “사체의 여러 외상도 욕조 내에서 사망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손상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원심은 여러 상처에 근거해 부인의 사망 원인을 ‘목조름에 의한 질식사’로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피해자가 실신하거나 (욕실에서) 낙상을 입게 되는 과정에서 충격 등으로 경부압박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해 질식사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다”며 견해를 달리했다.
원심은 또 범행동기와 관련해 백씨가 당시 전문의 자격시험을 잘 보지 못해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부인과 크게 다툰 끝에 격분, 피해자의 목을 졸라 살해했을 것으로 원심은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그러한 사정은 부부 사이에 다툼의 동기는 될 수 있어도 살인의 동기로는 매우 미약하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이 원심이 유죄의 판단근거로 제시한 정황과 증거를 대부분 파기함으로써 서울고법에서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커졌다. 게다가 대법원이 백씨가 먼저 집을 나선 뒤 부인이 욕실에서 출근 준비를 시작하다 사망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여전하다고 밝혀 공소를 유지해야 하는 검찰도 입장이 곤혹스러워졌다.
이 사건은 7년8개월간 재판이 진행됐던 치과의사 모녀 살인 사건처럼 판결이 여러 번 반전되면서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 치과의사 모녀 살인 사건은 1996년 치과의사가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는 무죄로 뒤집혔다. 이어 대법원 상고심에서 다시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됐으나 2001년 고법 환송심과 2003년 대법원 재상고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백씨는 유명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레지던트 4년차이던 지난해 1월 서울 도화동 집에서 출산을 한 달 앞둔 부인 박모(당시 29세)씨와 다투다 목을 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