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방대법관, 정치인보다 더 정치적… 성향따라 판결

입력 2012-06-29 00:36


미국 연방대법관은 종신직이다. 사망하거나 자진해서 사퇴하지 않는 한 평생 그 직을 수행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대법관 임명권은 대통령이 쥐고 있다. 이렇다보니 고령의 대법관이 어느 당 출신 대통령 임기에 사망하거나 사퇴하느냐에 따라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는 대법원의 성향이 달라질 수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70대 고령자가 대법관 9명 중 4명이나 되는 뉴딜 시기 이후 가장 고령화된 현 미 연방대법원 구성이 이번 대통령 선거의 중요성을 한층 높이고 있다고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우선 대법원 진보진영의 대표 격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80세로 최고령이며, 가장 뚜렷한 보수색을 드러내는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관은 76세,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 75세, 민주당 출신으로 대통령이 임명한 스티븐 브레이어 대법관 74세 등이다.

현재 미 연방대법원은 보수 대 진보가 5대 4로 나뉘어져 있고, 주요 판결마다 이러한 개인적·정치적 성향이 반영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번 오바마케어 판결도 결국 대법관들이 진보·보수로 나뉜 가운데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찬성표를 던져 향배가 결정됐다. 이런 가운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선거에서 패한다면 진보 성향 대법관의 고령과 겹쳐 대법원의 보수 성향이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밋 롬니 공화당 후보가 집권했을 때 ‘인원 공백’이 생긴다면 보수 성향의 대법관으로 대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랜들 케네디 하버드법학대학원 교수가 지난해 “고령이며 진보 성향의 긴즈버그와 브레이어 대법관은 오바마 대통령 임기 중 사퇴해서 오바마가 젊은 진보 성향의 판사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실제 역대 대법관들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맞춰 사퇴시기를 결정한 사례가 흔하다는 게 NYT의 분석이다. 연방대법원이 법리에 따라 판결이 내려지는 비정치적인 공간이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2005년 7월 남편 간병을 이유로 사퇴를 선언, 워싱턴 정가를 깜짝 놀라게 했던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의 결정도 우연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임명한 그녀는 같은 공화당 출신 대통령인 조지 W 부시 임기에 사퇴하기로 시기를 조절했다는 것이다.

진보파로 분류됐던 데이비드 수터와 존 폴 스티븐스 전 대법관도 오바마 취임 이후 사퇴했다. 제프리 스톤 시카고대 법학 교수는 “이들이 ‘때’를 기다렸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배병우 기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