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 2012] 골문 한 가운데로 툭… ‘강심장 무적함대’
입력 2012-06-28 18:52
승부차기 스코어는 2-2. 스페인의 수비수 세르히오 라모스(레알 마드리드)가 네 번째 키커로 나섰다. 라모스는 공을 향해 달려가 가벼운 칩 슛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포르투갈 골키퍼 후이 파트리시우는 왼쪽으로 몸을 날렸다. 라모스의 발을 떠난 공은 느릿느릿 골문 중앙을 향했다. 파트리시우는 포물선을 그리며 골문 안으로 들어가는 공을 망연자실한 얼굴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분위기가 스페인 쪽으로 확 기울었다.
28일(한국시간)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의 돈바스 아레나에서 열린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유로 2012’ 4강전은 스페인의 승부차기 승리(4대 2)로 끝났다. 이날 경기의 백미는 단연 라모스의 ‘파넨카(Panenka) 킥’이었다. 강심장이 아니면 시도할 수 없다는 ‘파넨카 킥’은 1976년 체코의 축구 영웅 안토닌 파넨카가 ‘유로 76’ 결승전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칩 슛이다. 승부차기에서 4-3으로 체코가 앞선 상황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선 파넨카는 속도를 줄인 칩 슛으로 골문을 갈랐고, 이후 이는 ‘파넨카 킥’으로 불렸다.
‘파넨카 킥’은 도박이다. 성공하면 경기 흐름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골키퍼가 눈치 채면 너무 쉽게 막혀 버린다. 골키퍼를 한순간에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이 킥은 상대 후속 키커를 ‘멘붕 상태’로 몰고 가는 효과도 있다. 실제로 포르투갈의 네 번째 키커 브루노 알베스(제니트)는 발에 힘이 들어갔고, 슈팅한 공은 결국 크로스바를 강타하고 말았다.
이날 경기의 최우수선수로 뽑힌 라모스는 “파넨카 킥을 미리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며 “위험하긴 했지만 골키퍼가 움직이는 것을 봤고, 골키퍼가 이쪽이든 저쪽이든 넘어갈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라모스는 이 ‘파넨카 킥’으로 지난 4월 열린 바이에른 뮌헨(독일)과의 2011∼2012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 승부차기를 실축한 아픔을 깨끗이 씻어냈다. 당시 1-2로 뒤진 상황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네 번째 키커로 나선 라모스는 어처구니없이 허공으로 치솟는 슈팅을 날려 결승 진출 실패의 원흉으로 지탄을 받았다.
‘파넨카 킥’은 이번 대회 잉글랜드-이탈리아 8강전 승부차기에서도 나왔다. 이탈리아의 안드레아 피를로(유벤투스)는 1-2로 뒤지고 있던 절박한 상황에서 ‘파넨카 킥’을 성공시켰다. 사기가 꺾인 잉글랜드는 애슐리 영과 애슐리 콜이 잇따라 실축하는 바람에 4강 티켓을 이탈리아에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 스페인도, 이탈리아도 파넨카에게 감사할 일이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