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고승욱] ‘법무법인 청와대’로 전락한 검찰
입력 2012-06-28 18:38
조선시대 사헌부는 고위 관리의 비행을 따지고 지위 남용을 적발했다. 백성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시시비비를 가려 바로잡는 역할도 했다. 사헌부에서 일하는 관리는 대관(臺官)이라 불렀다. 대관은 아무나 할 수 없었다. 청렴강직하고 시류에 영합하지 않아야 하며, 목숨을 걸고 옳은 일을 임금에게 직언할 수 있어야 했다. 대체로 젊고 기개 있는 인재가 특별히 추천받아 임명됐다.
지난해 천정배 전 법무장관이 검찰을 향해 “진정한 국민의 검찰인지, 이명박 왕조의 의금부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해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흔히 검찰을 사헌부에 비유했는데 갑자기 의금부 이야기가 나와 의아했다. 따로 본인에게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천 전 장관은 의금부가 임금의 명령을 받아 국사범, 반역죄를 다루며 억울한 죄인을 만들었던 폐단을 지금의 검찰에 오버랩시킨 게 아닌가 싶다. 실제로 연산군 시절 의금부는 충신을 잡아들이며 폭정을 충실히 보좌했고, 공포정치를 집행하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정권 존립 위해 심복 심어
사법 기능을 담당했던 사헌부와 의금부는 500년 넘게 이어진 조선을 지탱한 중요한 국가 기구였다. 근대국가의 통치조직 원리인 삼권분립이라는 개념이 확립되기 훨씬 전에 조선은 왕권과 신권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국가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했다. 의금부는 당대 최고의 물리력을 확보해 왕권을 수호했다. 전국의 수재가 모인 사헌부는 왕의 실책을 지적하고, 왕권을 업고 이권을 탐하는 세력을 벌하는 신권의 상징이었다. 물론 의금부와 마찬가지로 사헌부도 본분을 잃고 표류한 적이 많았다. 사화(士禍)는 언제나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요직을 제 사람으로 채우는 데서 시작됐다. 정종 때는 한동안 사헌부 관리가 한 해에 50∼60명씩 바뀌기도 했다. 사헌부는 당파싸움의 가장 치열한 전쟁터였고, 이곳에 심복을 심느냐 마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라졌다.
우리나라 역대 정권은 권력을 잡는 순간 가장 먼저 검찰에 시선을 돌렸다. 국가정보원, 국세청, 경찰 등도 주요 권력기관이지만 이들의 업무는 본질적으로 행정이다. 하지만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준 사법기관이다. 법치국가에서 최고의 수사권과 기소독점권을 가진 조직이고, 공직을 그만둬도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지위가 보장된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여기에 심복을 심지 못하면 정권은 존립이 위태롭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물러난 뒤 가장 효과적으로 검찰을 장악한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이 아닌가 싶다. 검찰이 ‘법무법인 청와대’라는 말까지 듣고 있으니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성공이다. 대통령의 대학 후배인 한상대 검찰총장이 각종 권력형 비리 사건이 쌓여 있던 시기에 임명돼 수사를 지휘하고 기소의 정치적 파장을 판단하고 있다. 고려대 인맥은 검사의 꽃인 서울중앙지검장을 비롯해 요직으로 대거 진출했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던 권재진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으로 직행해 검사 인사권을 장악했다. 최근 검찰은 민간인 불법사찰, 이 대통령 내곡동 사저 부지 구입 의혹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사헌부에 심복을 심고 전면전에 대비했던 조선시대 당파싸움마저 연상된다.
제자리 찾으려는 노력 있을까
검찰 정기인사가 다음달 초에 있다. 이 대통령이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마치고 27일 귀국했으니 청와대와의 마지막 조율이 시작될 것이다. 청와대는 당연히 내년을 생각하는 인사안을 구상하고 있을 터이다. 이번 인사가 끝난 뒤 검찰이 법무법인 청와대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는 말이 들리기를 바랄 뿐이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