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25명 거장의 자화상 통해 본 삶과 예술… ‘자화상展’

입력 2012-06-28 17:36


자화상展/천빈/어바웃어북

독일 화가 알프레드 뒤러(1471∼1528)의 자화상을 본 적이 있는가.

뒤러는 서양미술사에서 화가로서의 자의식을 갖고 자화상을 그린 첫 화가였다. 중세의 화가는 석공이나 보석세공사처럼 수공업자로 취급받았다. 하지만 미켈란젤로 다빈치 등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뒤러는 더 이상 기술자이기를 거부하고 당당히 화가임을 선언했다. 그런 자의식을 자화상에 담았다. 스물아홉에 그린 ‘모피코트를 입은 자화상’(그림)을 보자. 화려한 의상을 한 그의 시선은 정면을 응시한다. 이는 당시 예수나 왕에게만 허용되던 자세였다.

미술사를 연구하는 중국의 저자 천빈은 자화상의 아버지 뒤러에서 시작해 르네상스 미술을 이끈 다빈치, 라파엘로, 틴토레토와 절대 왕정기의 루벤스, 렘브란트를 거쳐 근대의 고흐, 고갱, 쿠르베와 현대미술의 뭉크, 달리에 이르기까지 미술사의 획을 그은 거장 25명의 삶과 예술을 자화상을 통해 들여다본다.

저자는 자기고백적인 자화상을 통해 그 화가의 삶을 읽어준다. 18세기에서 19세기 초 프랑스의 격변기를 살았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 권력을 추구했던 처세의 달인인 그는 권력이 교회에서 왕실로 넘어가자 잘 나가는 궁정화가로, 혁명이 일어나자 자코뱅당파 일원으로, 다시 혁명정부가 무너지고 나폴레옹이 실권자로 등장하자 거기에 빌붙는다. 한때 투옥됐던 그가 감옥에서 그렸던 자화상은 불확실한 시대를 줄타기했던 불안한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자화상은 또한 미술사의 변천을 읽는 방법이기도 하다. 20세기를 연 초현실주의 대표화가인 스페인 살바도르 달리(1904∼1989)의 자화상 ‘구운 베이컨과 부드러운 자화상’. 혓바닥을 의자에 앉힌 것 같은 비현실적인 형상으로 작가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콧수염을 그려 넣어 자화상임을 암시했다. 하지만 이 자화상을 본 사람이라면, 시계가 흘러내리고 나무 위에 빨래처럼 걸쳐 있는 그의 대표작 ‘시간의 영속’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결국 화가들의 자화상은 그들이 만들어낸 미술사의 축소판인 셈이다. 정유희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