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서 더듬고 “취해서 기억 안난다” “제발 한 번만 자 달라” 음란문자… 도넘은 대학가 성희롱 실태

입력 2012-06-27 21:48


대학가에서 여학생들은 선배, 동기, 교수를 가리지 않고 갖가지 성희롱에 시달린다. 또 자라나는 학생들을 가르쳐야 할 교육대학이나 사범계열 학생들의 성평등 의식이 오히려 낮게 조사됐다.

A씨는 올해 3월 대학원 연구실 선배와 술을 마시던 중 성희롱을 경험했다. 선배가 갑자기 A씨의 몸을 더듬은 것. A씨가 이에 반발하자 선배는 강제로 몸을 만지기 시작했다. A씨는 이튿날 사과를 요구했지만 선배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발뺌했다.

B씨는 국내 유명 사립대 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그런데 지난 1월 지도교수가 ‘모텔에서 논문 지도를 하겠다’며 단 둘이 만나자고 요구했다. 깜짝 놀란 B씨는 이를 거부했고, 지난 3월 피해 학생 3명과 함께 학내 성폭력상담소에 피해 사실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것은 고통의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이후 해당 교수는 사과는커녕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B씨가 ‘꽃뱀’이라고 소문을 냈다. 결국 B씨는 울며 지도교수를 바꿔야 했다.

C씨는 ‘문자 성희롱’을 당했다. 2008년 11월 대학 동기 D씨가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제발 한 번만 같이 자 달라’는 내용을 보내온 것. 심한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낀 C씨는 가해 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다.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겠다고 용기를 낸 것이다. 하지만 C씨는 오히려 가해 학생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고, 지금까지도 극심한 신경불안 및 대인기피증을 호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학내에도 서열이나 권력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성희롱 문제가 불거지면 주위 동료들도 힘이 되는 증언을 해주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히 가해자가 권력이나 지위를 악용해 자신이 오히려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피해자를 궁지에 몰아넣는 경우도 많아 문제가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최영지 활동가는 “교수나 선배 등이 가해자인 경우 문제제기 자체가 어렵고,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피해자 스스로 위축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 중에는 교육대학이, 단과대학 중에는 사범계열 학생의 성평등 의식이 현저히 낮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전국 대학생 555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성평등 실천 국민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교육대학의 성평등 지수는 4점 만점에 2.68점에 그쳤다. 반면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은 각각 2.85점을 기록했다. 성평등 지수가 높을수록 양성 평등에 가깝다는 뜻이다.

단과대 가운데 사범계열 학생들의 성평등 지수는 2.77점으로 인문대나 사회과학대 성평등 지수인 2.86, 2.88보다 낮았다. 특히 사범계열 학생들은 인문학부와 사회과학부 등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에 비해 ‘학과 행사 시 식음료 및 다과를 준비하는 것’은 여성의 몫이고, ‘팀 예산 입출금 관리’ 등은 남자의 일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보고서는 “성역할 고정관념이 높은 교육대학·사범계열 학생들이 앞으로 초·중·고 교육 과정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왜곡된 성의식을 심어줄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