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그림 속 나룻배 뒤를 따라… 김홍도 자취를 찾아 떠난 단양팔경
입력 2012-06-27 18:14
여행을 갈 때 필요한 것은 사전 지식이다. 정작 더 필요한 것은 상상력인지 모르겠다. 여행지 역사를 알고, 거기에 더해 수백 년 전 그 장소를 찾았던 이들의 차림새와 표정, 감흥까지 상상해 낼 수 있다면! 하지만 아주 어려운 건 아니다. 뭇 화가들이 풍광 좋은 곳을 놓치지 않고 화폭에 담았으므로. 충북 단양팔경(丹陽八景)이 그런 곳이다. 신선세계를 뜻하는 붉은 단(丹)이 지명에 들어간 단양엔 남한강이 만들어낸 절경이 산재해 있다. 그 중에서도 아름다운 8곳이 단양팔경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지난 주말, 명지대문화유산연구소가 단원 김홍도 발자취를 따라 떠난 단양팔경 답사를 동행 취재했다. 명지대문화유산연구소는 우리 문화재 및 전통 미술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위해 봄·가을 정기 학술대회 및 답사를 갖는다.
# 18세기 국토 여행 붐을 증언하다
단양팔경은 18세기 조선 식자층을 휩쓴 국토 여행 붐을 증언하는 곳이기도 하다.
조선은 개국 이래 중국을 숭상하는 나라였다. 화법(畵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의 화보(畵譜)를 참고했고, 고사(古事)에서 주제를 끌어왔다.
전쟁은 모든 것을 바꾸었다. 왜란과 호란을 거치는 사이, 중국에는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섰다. 식자층, 특히 당시 정권 실세였던 서인세력은 오랑캐라고 무시했던 여진족이 주자의 나라 중국 땅의 주인이 된 걸 인정할 수 없었다. 이제 조선이야말로 진정한 중화의 계승자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이른바 ‘소중화(小中華·조선은 중국에 버금가는 문명국이라는 생각)’ 사상의 탄생이다. 소중화 사상은 조선 고유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하면서 우리 국토를 새롭게 보게 했다. 1636년 병자호란 이후 수십 년이 흐른 즈음인 숙종 때부터 산수유람 문화가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선비들은 앞 다투어 국토의 아름다운 곳을 누볐다. 화가들도 함께 했다. 그들은 직접 눈으로 본 우리 산 우리 강을 새로운 기법에 담아 그렸다. 겸재 정선(1676∼1759)으로 대표하는 ‘진경산수화’는 그렇게 탄생했다. 진경산수는 최북(1712∼1786?), 김홍도(1745∼?), 이인문(1745∼1821), 정수영(1743∼1831) 등 후배 화가들에게 계승돼 정조 시절에 이르기까지 120여년을 풍미한다.
# 옛 화가들 필묵의 추억 어린 곳
단양은 진경산수 문화를 대표하는 명승지다. 많은 선비와 화가들이 이곳을 찾았다. 정선, 최북, 김홍도. 이방운, 이윤영, 윤제홍…. 특히 걸출했던 궁중화가 김홍도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재주를 높이 산 정조 임금 덕분에 40대 후반에 중인 신분으로서는 파격적으로 연풍(지금의 괴산) 현감을 1791년부터 1795년까지 지낸 그는 인접한 단양의 풍광을 많이 남겼다.
명지대문화유산연구소와 함께 찾은 단양은 초입부터 풍경이 달랐다. “저런 바위 질감이 단양의 맛이야.” 답사팀을 이끄는 이태호 소장(명지대 교수)은 강 건너 암벽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어 강을 따라 펼쳐진 단양의 8경은 그런 바위 절벽이 지닌 멋의 확장이었다. 도담삼봉, 석문, 사인암,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구담봉, 옥순봉…. 남한강 상류에 있는 단양 땅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특유의 석회암이 만들어내는 형형색색 바위색 변화, 유유히 흐르는 푸른 강물의 운치가 어우러져 절경을 잉태한 것 같았다.
“도담삼봉은 화원화가 김홍도가 정면에서 그렸다면, 선비화가 이방운은 석문이 있는 산 위에서 내려다본 위치에서 그렸지.” 화원화가들이 실제 경치에 가깝게 그렸다면, 선비화가들은 인상을 중시한 탓에 실경과 덜 닮게 그리는 경향이 있었다.
# 상상력, 나룻배와 쾌속 유람선 여행의 간극을 넘다
도담삼봉은 남한강 상류에 섬처럼 나란히 앉은 세 개의 기암이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조상들은 그 크기와 모양을 따져 남편봉, 처봉, 첩봉이라고 이름 지었다. 남편을 사이에 두고, 자식을 못 본 본처가, 아이를 밴 불룩한 배를 내밀고 있는 첩을 시샘해 돌아앉은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절경을 마주 한 선비들과 화가들은 얼마나 흥취에 빠졌을까. 누군가는 그림으로 아름다움을 기록했지만, 누군가는 바위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조선식 ‘인증샷’이다. 그래서 답사의 또 다른 즐거움은 산수유람에 나섰던 선비들의 이름이 새겨진 바위를 찾는 것이다. 사인암 주변에는 여기에 은거하고자 했던 조선 후기의 꼬장꼬장한 선비화가 이인상(1710∼1760)이 친구들과 이곳을 구경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전서체로 자신들의 이름을 새긴 바위가 있다.
김홍도는 사인암 그림을 여러 장 남겼다. 이방운이 그린 사인암 그림에는 당시 양반들의 유람 모습이 담겨 흥미롭다. 그들은 말을 타거나 가마를 타고 여행을 다녔다. 김홍도가 남긴 또 다른 단양팔경 걸작은 옥순봉이다. 비온 뒤 대나무 죽순처럼 솟았다는 옥순봉. 그들이 나룻배를 타고 음미했을 절경이지만, 21세기 우리는 댐이 만들어져 생긴 충주호 유람선을 타고 쾌속으로 감상한다.
그래서 상상력이 필요하다. 풍경에 반해 도포자락 휘날리며 감탄사를 연발했을 18세기 선비들의 감흥 속으로 뛰어 들어가기 위해, 그들의 마음이 돼 새삼 국토의 아름다움에 눈뜨기 위해서 말이다.
단양=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