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박선이] 텃밭에서
입력 2012-06-27 18:31
지난 주일 오후 현리에 있는 언니 집에 갔다. 오랜만에 푹 쉬고 싶었다. 왜 그런지 서울에 있으면 아무 일 안 하고 있어도 쉬는 것 같지가 않다. 시각과 청각이 편안하지 않기 때문일까. 시골집에 도착하니 사방이 초록빛으로 둘러싸여 있고, 새소리가 들려올 뿐 조용하다. 비로소 평화가 강같이 흐르는 기분을 느끼며 여유로움을 만끽한다.
아침에 일어나 텃밭을 둘러보았다. 먹음직스럽게 자란 오이와 커다란 잎에 몸을 숨기고 있는 애호박을 땄다. 크지 않은 텃밭이지만 꽤 많은 종류의 채소들이 살고 있다. 한창 자라고 있는 가지와 고추, 감자. 끝물인 복분자와 대파, 몇 년째 땅속에서 조금씩 몸을 키우고 있는 도라지와 더덕, 상추 등의 쌈 채소와 넝쿨을 뻗고 있는 고구마, 밭의 가장자리에서 크고 있는 옥수수와 완두콩 등. 모두가 사랑스러워 보였다.
어떤 것은 씨앗으로 심었고, 어떤 것은 모종을 사와서 심었다. 농사 경험이 전혀 없는 초보들이어서 어설프게 심고 가꾸었건만 이렇게 잘 자라주었으니 얼마나 대견스럽고 뿌듯한지….
끼니때마다 식탁에는 방금 전 밭에 있던 것들이 올라와 있다. 마른 새우를 넣어 끓인 아욱국, 들깨가루를 넣은 구수한 호박볶음, 시금치나물과 쑥갓나물, 싱싱한 상추와 풋고추, 지난가을 수확한 배추로 담근 김치까지 풍성하다. 점심에는 금방 캔 감자를 쪘는데, 얼마나 부드럽고 포슬포슬한지 “감자가 이렇게 맛있는 거였어?” 하고 감탄하며 먹었다. 고추장에 찍어 먹은 오이도 달달하고 상큼한 맛이 일품이었다.
오빠가 집에 가져간다고 감자 몇 포기를 캤다. 크고 작은 감자들이 줄줄이 나타나는 게 참 보기 좋았다. 그 순간, 마음을 채우는 풍요로운 느낌! 땀 흘려 수고한 농부들이 수확할 때 얼마나 큰 기쁨을 느낄지 짐작이 갔다. 그리고 사랑과 정성으로 생명을 기르며, 자라서 결실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사람에게 아주 커다란 기쁨과 가르침을 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종을 심었는데 계속 열리는 것을 보면서, 감자 한 조각을 심었는데 크고 작은 감자가 수십 개씩 생긴 것을 보고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넓고도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밭 갈고 씨 뿌리고 김매는 수고야 사람이 한다 해도, 몇 십 배의 결실을 얻기까지는 하나님의 손길 없이는 불가능할 테니까.
감자를 캐는 장면에 순간적으로 차오른 느낌은 바로 ‘아,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이 세상에 가득하구나’ 하는 깨달음이었다. 사람이 조금만 수고하면 얼마든지 좋은 것을 먹고살 수 있도록 온갖 곡식과 채소를 주셨고, 아름다운 자연으로 가득 채워주셨는데, 마음이 둔해진 인간은 그것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에 감사도 모르는 것이다.
각박한 도시 생활에 지친 어른들과 아파트 숲에서 정서가 메말라 가는 아이들 모두 작은 농부가 되어 생명의 신비와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하게 되면 참 좋겠다.
박선이(해와나무출판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