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약사의 미아리 서신] 하나님을 만나 행복한 그녀
입력 2012-06-27 18:26
무거움이 가득한 여름입니다.
연일 쏟아지는 불볕더위, 갈라져버린 논바닥, 세상의 모든 것들이 겪는 아픔에 가슴이 아픕니다. 하루하루 무슨 즐거움으로 삶을 이어가고 계신지요.
저는 아침 출근길에 만나는 교회 마당 한켠에 한 뼘도 채 안 되는 땅에서 열심히 자라는 작두콩과 대화하는 일로 하루를 행복하게 시작합니다. 작두콩 넝쿨은 지난주부터 2층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자란 넝쿨손이 아직도 1층에서 헤매고 있고 이파리들도 그리 크게 자라지는 못했습니다. 김 집사님은 잘 자라라고 아침저녁으로 물을 열심히 주시고 이야기도 자주 나눈다고 했습니다.
집사님으로 인해 행복한 작두콩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 옆에 계셔 행복하다는 미정씨가 오늘도 환한 표정으로 약국 앞 골목을 지나갑니다. 미정씨는 지체장애가 있어 제대로 걸을 수가 없습니다. 발뒤꿈치가 땅에 닿지 않는 독특하고 불안한 걸음으로 걸어가는 그녀는 자주 넘어져 무릎이 성할 날이 없습니다. 미정씨의 신발은 늘 구슬이 달린 색 고운 슬리퍼입니다. 운동화를 신으면 좀 다니기 편할 텐데도 미정씨는 늘 얇고 화려한 슬리퍼를 고집합니다.
“원장님, 여자는 예쁘게 하고 다녀야 해요. 깔끔하고 곱게.”
미정씨가 저를 부르는 호칭은 원장님입니다. 제가 원장님이 아니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도 그 순간에는 알아듣다가 다음이면 또다시 원장님이라고 합니다. 사실 미정씨와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매우 빨리 반복하는 그녀 특유의 말투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제가 미정씨와 대화하기 시작하면서 미정씨에게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매주 토요일이면 그녀의 화려한 나들이가 시작됩니다. 원색의 정장을 입고, 머리에는 옷과 같은 색의 화사한 깃털 핀을 꽂고 또 색을 맞춘 핸드백을 메고 미장원에 갑니다.
“원장님,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러 교회에 가는 주일은 신나고 즐거운 날이니까 가장 예쁘게 하고 가야지요. 미리 준비를 해야 해요.”
미정씨는 평소 외모에 신경 쓰지 않고 화장도 하지 않는 저를 가끔 야단칩니다.
“왜 예쁘게 하지 않느냐고”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는 일이 즐겁지 않느냐”고. 내게 머리를 매만지고 화장도 하고 예쁘게 꾸미라고 합니다.
요즘 미정씨는 콩나물국밥을 아주 좋아합니다.
동네 들어오는 입구에 콩나물국밥집이 있는데 조미료를 쓰지 않고 천연양념으로만 간을 해 제 입맛에 딱 좋아 자주 다니고 있지요. 얼마 전 점심 먹으러 갔다가 미정씨를 만났습니다. 홀로 앉아 김치를 자르고 뜨거운 국밥을 먹는 미정씨의 손길이 많이 불안해 보였고 그런 미정씨를 힐끗 힐끗 보는 눈길이 느껴져 불편했습니다. 하여 미정씨 자리로 가서 김치도 자르고 물도 따라주며 같이 맛있게 먹었습니다. 환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은 참으로 예뻤습니다.
그 뒤로도 가끔 그녀와 함께 콩나물국밥집 점심 나들이를 하곤 합니다.
미정씨의 착한 동생들이 생활비는 물론 반찬도 만들어서 보내주는 모습을 가끔 봅니다. 동생들이 반찬을 보내는 날이면 신이 난 미정씨는 엄청 자랑을 합니다. 콩나물국밥집에서 밥을 먹을 때에도 ‘원장님이 내 친구’라며 우쭐해합니다.
불편한 손으로 그린 눈썹과 아이섀도가 삐뚤빼뚤하지만 미정씨는 참으로 곱고 예쁜 여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 한낮의 더위를 가볍게 만들어 주는 재주가 미정씨에게 가득합니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세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가득 받아 여러분을 시원하고 가볍게 해줄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서울 미아리 집창촌 입구 ‘건강한 약국’ 약사·하월곡동 한성교회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