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용백] 전력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입력 2012-06-27 18:34


“원가보다 낮은 전기요금 현실화가 선순환적인 전력정책의 시작이다”

지난 23일 오전 10시20분쯤 여의도공원 가로등들이 밝게 켜져 있었다. 해뜨기 직전에 꺼졌어야 할 전등들이 전기를 먹는 모습이었다.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날 오후 사상 첫 대규모 정전 대비 훈련이 실시됐었다. 그로부터 하루도 채 안된 시점에 훈련을 무색하게 하는 전기 아까운 줄 모르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훈련은 지난해 9·15 대규모 정전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또 낮은 전력예비율에 따른 위기 대응 차원이었다. 하지(夏至)의 더운 날씨에 오후 2시부터 20분간 전국 7개 대도시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정부는 이번 훈련을 통해 전력 수급 관리에 자신감이 조금 생긴 모양이다.

계속 절전을 외친다. 에어컨을 켠 채 문 열고 영업하면 과태료를 최고 300만원 물린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하지만 여의도공원처럼 공공관리 부문의 전기가 줄줄 새는 마당에 누구를 핍박할 수 있겠는가. 다 값싼 전기요금 탓이라는 게 중론이다.

본격적인 여름철로 접어들면서 전기요금 인상 문제가 불거졌다. 인상은 불가피한데 인상 폭을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느냐가 초미의 관심거리다.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진행되기 전에 결정해 시행해야 하는 촉박함도 있다.

한국전력은 지난 4월 말 평균 13.1% 인상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정부는 당연히 물가와 산업계의 충격을 고려해 이를 반려했다. 전기요금을 결정하는 지식경제부 전기위원회가 머리를 싸매고 있다. 평균 4% 인상을 검토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한전의 요구는 현 전기요금이 원가 대비 87% 정도밖에 안 되니 이를 100%가 되도록 개선해 달라는 것이다. 원가보다 낮은 ‘값싼 전기’를 공급하다 보니 만성적인 적자에서 헤어날 수 없다는 현실적인 고민이 없지 않다. 지난해 적자가 3조5000억원이었고, 올해 1∼7월 적자 규모는 4조8000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회사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도저히 경제논리에 맞지 않는다.

문제는 전기요금 결정에 계속 정부가 개입해 한전의 적자 구조를 만성화하고 있는 것이다. 가격이 현실화되지 않아 늘어가는 적자를 정부가 세금으로 보전해주는 꼴이다. 공기업의 방만 경영을 정부가 조장하는 셈이다.

전력난 해결의 출발점은 명쾌하다. 전기요금 수준을 시장에 맡겨서 그에 따라 전력의 공급과 수요가 움직여가도록 하면 될 일이다. 사용자는 그에 상응하는 값을 치르면 된다. 비싸다고 생각하면 적게 쓰는 궁리와 처방을 할 것이다. 국내 전력의 55% 정도를 쓰는 산업계는 원가 절감을 위한 다양한 전기 절약과 효율화에 투자와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22% 정도의 상업용 전기를 쓰는 상가나 대형 유통업체 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럴 형편도 못 될 경우 웬만하면 전기를 쓰지 않는 게 상책이다. 돈 많이 벌면 세금 많이 내는 게 원칙이다. 이에 따라 기업이나 가계가 절세(節稅)를 위해 고민한다. 상품도 개발된다. 그게 선순환 구조 아닌가.

정전 대란의 우려는 전력예비율이 낮아지면서 나타났다. 여러 이유가 있다. 발전소 건설 등이 차질을 빚으면서 수요에 따른 적절한 전력 공급이 되지 않는 점, 계절적 냉난방으로 수요가 단기간 과잉상태가 되는 점, 기후변화로 예측되지 않은 수요가 발생할 수 있는 점 등이다. 중요한 것은 이를 감안한 수요 관리다. 관리에 있어 억지로 수요를 통제하는 등의 조작보다는 현실적인 가격이 효과적일 수 있다. 물론 적절한 공급 가이드도 필요하다.

한국은 물 부족 국가이면서 에너지 부족 국가가 됐다. 이제는 전기요금이 싸 부담 없이 낭비하는 전기 소비 패턴에서 시급히 벗어나야 한다. 전기 사용자들이 ‘값싼 전기’가 아닌 ‘제 값 내고 쓰는 전기’로 인식을 바꾸어야 대정전의 공포에서 스스로 자유로워질 게 분명하다. 정부도 일시적인 미봉책을 되풀이하면서 산업계와 국민들에게 생색을 내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용백 사회2부장 yb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