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전쟁이란

입력 2012-06-27 18:33

6·25 62주년을 맞아 치러진 한·미 연합군의 통합화력훈련을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38개 부대에서 2000여명의 병력과 자주포, 벌컨포, 다연장로켓, 탱크, 무장 헬기와 전투기 등이 참가해 경기도 포천 승진훈련장에서 치러진 훈련을 직접 본 느낌은 한 마디로 무서웠다.

훈련장 여기저기서 발사된 각종 화기의 화염이 멀찌감치 떨어진 관람석에까지 화끈한 열기를 전해왔고, 거리 때문에 불꽃이 보인 한참 뒤에야 들린 발사음, 폭발음은 고막뿐 아니라 전신을 뒤흔들었다. 또 F-15K 전투기에서 쏘아진 SLAM-ER 공대지 미사일은 ‘쾅’이라는 뜻의 이름답게 관람석에서 3㎞ 떨어진 표적에 명중했는데도 그 충격파가 관람석까지 날아와 뱃속마저 떨려 왔다. 원래 Stand-off Land Attack Missile-Expanded Response의 약자지만 slam이라는 단어 자체는 ‘쾅’이라는 의성어다.

전쟁영화에서 이런 스펙터클한 장면을 봤다면 신이 났겠지만 현실에서 접하니 겁부터 났다. 저토록 위력적인 무기들이 피아를 불문하고 인간의 살을 찢고 뼈를 부술 것을 생각하니 전쟁에 대한 혐오감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그런 한편으로 얼마 전에 본 영화의 대사가 생각났다. 2차대전에 참전했던 할아버지와 나중에 이라크전에 참전하는 어린 손자 간의 진솔한 대화와 정을 통해 전쟁과 인간, 가족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현충일(Memorial Day)’이라는 제목의 미국 영화.

“전쟁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거란다. 전쟁터에서 일어나는 일도 피할 수 없지.” 영화에서 2차대전 당시 유럽전선에서 싸웠던 할아버지는 이라크전에 참전한 손자에게 보낸 유서 같은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 아무도 원치 않는 전쟁이지만 그래도 전쟁은 일어난다. 천안함을 보라, 연평도 포격을 보라. 전쟁은 그토록 우리 가까이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선택사항이 아니다. 그럼에도 통합화력훈련 같은 것을 통해 전쟁을 준비하고 전쟁에 대비하는 것은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해서다. 전쟁의 불가피성과 불가항력성을 인정한다면 전쟁에 대한 대비는 필수 중의 필수다.

이른바 진보파가 툭하면 내뱉는 ‘그럼 전쟁하자는 말이냐’는 어리석은 질문에는 ‘그렇다’고 명료하고 강력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전쟁을 각오하지 않고는 전쟁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으되 전쟁이 일어나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것도 두말할 나위가 없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