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효하던 두 물줄기 검은 소에서 수줍은 포옹… 별유천지 ‘동해 무릉계곡’
입력 2012-06-27 21:56
김홍도나 신윤복이 다시 살아나 무릉계곡을 찾으면 무엇부터 그릴까. 여인의 피부처럼 하얀 무릉반석을 미끄러지는 옥류에 발을 담근 탁족도가 그 첫 번째요, 너무 깊어 물빛마저 검은 용추폭포의 위용이 두 번째일 것이다. 그러나 조선 산수화단의 대가인 그들도 두 개의 폭포가 검은 소(沼)에서 만나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는 쌍폭포 앞에 서면 감히 붓 들기를 주저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미와 남성미가 오묘한 조화를 이룬 쌍폭포에 눈이 멀고 귀가 멀기 때문이리라.
드라마 ‘바람의 화원’은 도화서 화원들의 외유사생(外遊寫生)으로 시작된다. 신윤복(문근영 분)이 두타산과 청옥산의 형태를 붓으로 그리다 미모의 기생 정향(문채원 분)에게 첫눈에 반한 곳이 바로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의 무릉계곡 초입에 위치한 무릉반석이다.
백두대간 두타산(1353m)과 청옥산(1404m)이 만들어낸 무릉계곡은 기암괴석과 폭포, 그리고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동해안 최고의 절경을 연출한다. 무릉계곡은 호랑이가 건너뛰다 빠져 죽었다는 호암소에서 용추폭포에 이르는 4㎞ 구간. 계곡이 좁고 아름다워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으로 불린다.
무릉계곡의 매력은 여느 계곡과 달리 지루한 ‘예고편’이 없다는 점. 주차장에서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바로 무릉반석을 비롯한 무릉계곡의 진경산수화가 두루마리처럼 펼쳐진다. 고려시대 대학자인 이승휴가 머물며 ‘제왕운기’를 집필했다는 무릉반석은 1500평 넓이의 암반으로 수백 명이 앉아 탁족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너르다.
매월당 김시습을 비롯해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시와 이름이 빼곡하게 새겨진 무릉반석은 세계 최대의 암반시집. 그 중 으뜸은 조선시대 3대 명필인 양사언이 썼다고 전해지는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武陵仙源 中臺泉石 頭陀洞天)’이라는 거대한 초서체. ‘신선이 노닐던 이 세상의 별천지, 물과 돌이 부둥켜서 잉태한 오묘한 대자연에서, 잠시 세속의 탐욕을 버리니 수행의 길이 열리네’라는 뜻으로 글씨는 흐르는 물에 닳고 닳아 희미하다.
시간이 머문 무릉계곡은 드라마나 영화촬영지로도 이름 높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을 비롯해 드라마 ‘황진이’에서 황진이(하지원 분)의 목욕 신, ‘시티홀’에서 서민 출신 시장(김선아 분)과 국회의원(차승원 분)의 첫 키스가 무릉반석에서 촬영됐다.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과 영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 영화 ‘싸울아비’도 무릉계곡을 무대로 삼았다.
천년고찰 삼화사를 지나자 아름드리 소나무와 굴참나무 등이 울창한 숲길이 시작된다. 한여름의 따가운 햇살이 나뭇잎을 뚫고 부챗살처럼 퍼지는 숲길을 20분쯤 오르면 붉은 돌을 쌓아놓은 형상의 학소대. 청옥산에서 흘러내린 하얀 옥류가 매끄러운 암반을 타고 지그재그로 흐른다. 학소대란 물줄기가 내려오는 모습이 마치 학의 모습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학소대를 지나면 울창한 숲 속에서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가 희미하다. 물소리를 쫓아 초록물이 뚝뚝 떨어지는 숲을 5분쯤 오르면 100m 높이에서 4단으로 떨어지는 관음폭포가 위용을 자랑한다. 오랜 가뭄으로 물줄기는 가늘지만 비 온 뒤에는 수량이 늘어나 장관을 연출한다.
장군바위와 병풍바위를 지나고 선녀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자 쌍폭포의 물소리가 지축을 흔든다. 두 개의 폭포가 하나의 소에서 만나는 쌍폭포는 무릉계곡을 대표하는 폭포. 오른쪽 폭포는 용추폭포에서 떨어진 물이 반석을 흐르며 숨을 고른 후 다시 한번 수직 낙하하는 폭포로 남성미가 돋보인다.
반면에 두타산 박달골이 시원인 왼쪽 폭포는 계단처럼 생긴 바위를 타고 흐르는 폭포수가 선녀의 날개옷처럼 투명하다. 마치 황진이가 비에 젖은 세모시를 걸치고 화담 서경덕을 유혹할 때의 자태라고나 할까.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는 쌍폭포가 검은 소에서 만나 나누는 운우지정을 방해할까봐 다람쥐조차 고개를 돌린다.
무릉계곡의 최상류에 위치한 용추폭포는 쌍폭포 바로 위에 있다. 용추폭포는 본래 3단 폭포지만 아래에서는 하나만 보인다. 오목한 바위에서 흘러나온 물줄기가 너무 깊어 물빛마저 검은 소를 향해 거침없이 낙하한다. 용추폭포가 얼마나 장관이었던지 삼척부사 유한전은 폭포 하단 절벽에 ‘용추(龍湫)’라는 글을 새겨 놓았다.
두타산과 청옥산 정상을 밟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려면 하늘문을 올라 하산해야 한다. 쌍폭포 아래 갈림길에서 청옥산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고즈넉한 숲길 끝에서 300여 개의 철계단이 수직에 가까운 하늘문을 만난다. 하늘문이 위치한 청옥산 골짜기는 임진왜란 때 적과 아군의 피가 흐르다 말라 피마름골로 불리는 곳으로 이곳에서는 절대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
천길만길 낭떠러지에 걸린 철계단을 올라 청옥산 산허리에서 만나는 신선바위는 바람이라도 건듯 불면 무릉계곡으로 굴러 떨어질 듯 아찔하다. 신선바위 끝부분에 오목하게 패인 구멍은 신선이 앉았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곳으로 두타산 전경과 무릉계곡이 한눈에 들어오는 명소.
신선바위에서 보는 두타산은 날렵한 생김새가 금강산에 버금간다. 조선 선조 때 삼척부사를 지낸 김효원은 두타산을 주유한 후 ‘하늘 아래 산수로 이름 있는 나라는 해동조선과 같음이 없고, 해동에서도 산수로 이름난 고을은 영동 같음이 없다. 영동에서도 명승지는 금강산이 제일이고 그 다음이 투타산이다’라고 기록했다.
계곡이 얼마나 아름다워야 ‘무릉’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는지 알고 싶으면 하늘문을 오르는 수고를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동해=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