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다 본 호수·송림 관동별곡을 새로 쓰다… 제철 만난 여행지 ‘강릉 경포’
입력 2012-06-27 18:14
‘강남에 비개이자 저녁 안개 자욱한데/ 비단 같은 경포호수 가이없이 펼쳐졌네/ 십리에 핀 해당화에 봄이 저물고 있는데/ 흰 갈매기 나지막이 소리내며 지나가네’(정조의 어제시)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잔잔한 호수는 비단을 곱게 다려 펼쳐놓은 것 같다”고 노래한 강원도 강릉 경포호는 금강산 다음으로 시인묵객들의 찬사를 받았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경포호의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숙종은 물론 정조까지 임금이 지은 시(詩)인 어제시(御製詩)를 내렸을 정도.
호수의 물빛이 거울처럼 맑다고 해서 명명된 경포(鏡浦)는 석호인 경포호를 비롯해 호숫가에 세워진 경포대·해운정·금란정 등을 비롯한 누각과 정자들, 그리고 호수 동쪽의 경포해변과 바닷가 해송 숲을 아우르는 지명. 경포호는 둘레가 12㎞에 이르는 큰 호수였으나 농경지로 매립되고 토사가 흘러들어 4㎞로 줄었지만 호수 저편이 아물아물하게 보일 정도로 여전히 넓다.
예로부터 달빛이 교교한 밤에 경포대에서 술잔을 기울이면 하늘과 호수, 바다와 술잔, 그리고 님의 눈동자에 하나씩 모두 다섯 개의 달이 떠오를 만큼 운치 그윽한 경포에는 최근 경포호 산소길이 개설돼 찾는 사람이 더욱 늘었다. 호수를 에두르는 경포호 산소길은 ‘강원 삼천리 산소길’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호반길. 산책로와 자전거길을 걷거나 달리다 보면 참소리박물관과 온갖 화초로 단장한 경포꽃동산 등이 여행객들을 반긴다.
경포대는 신라 화랑들이 노닐던 곳에 세워진 누각으로 관동팔경 중 으뜸. 정조의 어제시 등 경포를 노래한 14편의 시비가 세워진 진입로를 통해 누각에 서면 경포호가 한눈에 들어온다. 고려 말인 1326년 창건된 경포대는 1508년에 강릉부사 한급이 지금의 자리로 이건했다. ‘제일강산(第一江山)’이라는 글씨가 걸려있는 경포대의 뒤쪽엔 아름드리 소나무 수십 그루가 호위하듯 경포대를 둘러싸 운치를 더한다.
경포호와 인접한 길이 1.8㎞, 폭 80m의 경포해변은 동해안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해수욕장. 백사장 주변에 우거진 해송 숲이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는데다 해수욕장의 경사가 완만하고 수질이 깨끗해 여름철에는 피서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 주변에 텐트를 칠 수 있는 캠핑장과 오토캠핑장은 물론 다양한 숙박시설과 음식점이 밀집해 화려한 조명이 해변을 밝히는 밤에는 불야성을 연출한다.
최근 경포호는 물론 경포해변을 한눈에 조망하는 명소가 탄생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겨냥해 7월 1일 개장하는 경포해변의 라카이샌드파인(www.lakaisandpine.co.kr)이 그 주인공. 206실 규모의 10층짜리 콘도 5개동과 리셉션동, 컨벤션동, 야외 테마가든으로 구성된 라카이샌드파인은 야외풀장, 산책로, 사우나, 연회장 등 격조 높은 부대시설을 갖춘 리조트.
하와이 원주민어로 ‘빛나는 바다’라는 뜻의 라카이는 앞으로 드넓은 동해바다가 펼쳐지고, 뒤로 백두대간 능선을 비롯해 대관령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1동과 2동의 10층 펜트하우스 테라스는 경포 앞바다와 경포호, 그리고 백두대간을 한 장의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 특별한 장소.
라카이샌드파인의 테라스에서 보는 경포호는 한 폭의 그림. 흘러내리는 물방울처럼 보이는 호수 한가운데의 바위섬과 정자는 조암으로 불리는 새바위와 월파정으로 송시열이 쓴 ‘조암(鳥岩)’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다. 평지에서는 밋밋하게 보이던 새바위와 월파정도 높은 곳에서 보면 김홍도가 그린 ‘경포대’와 무척 닮았다.
경포가 아무리 절경이라지만 경포호만 구경하고 초당순두부를 맛보지 않으면 ‘팥소 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 오늘날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초당순두부의 역사는 400년 전 조선시대로 거슬러 오른다. 초당순두부를 탄생시킨 주인공은 ‘홍길동전’ 저자 허균의 아버지로 당대 석학인 초당 허엽.
삼척부사로 부임해 본가인 강릉에 자주 들르게 된 허엽은 어느 날 하인에게 동해안에서 귀한 천일염을 어렵게 구하지 말고 바닷물을 간수로 사용해보라고 지시한다. 그렇게 만든 두부의 맛이 부드럽고 구수하기가 가히 일품이었다. 현재의 초당순두부는 가업으로 몇몇 집에서 이어져 오다 1970년대에 허난설헌 생가가 위치한 경포호 남쪽에 순두부마을이 형성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현재 40여 음식점에서 순두부, 모두부, 콩비지, 청국장 등을 맛볼 수 있다.
강릉=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