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배의 말씀으로 푸는 건강] 내면의 아이

입력 2012-06-26 18:29


어린 시절, 가정에서 경험한 감정의 소용돌이는 얼마나 강렬한지 나무의 옹이처럼 그 생채기가 우리 몸과 마음에 깊숙이 각인되나 봅니다. 신체에 입은 상처는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며 그 반흔이 옅어지지만 어린 시절 받은 마음의 상처는 종내 잊혀지길 거부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부정적인 감정의 상흔은 세월이 흘러도 사그라지지 않고 그림자처럼 우리 뒤를 따라다니며 내내 위력을 발휘합니다. 그 흔적은 결혼생활에도, 직장생활에도 심지어 하나님과의 관계인 신앙생활에도 불쑥불쑥 끼어들어 영향력을 끼칩니다. 기쁨이나 감사, 따뜻한 보살핌에서 우러나는 만족감들은 삶을 관통해 안정감을 제공해 주는 든든한 발판입니다. 하지만 언제 돌이켜봐도 서글픈 가정폭력이나 사방이 차단된 방에 갇힌 듯 완벽을 요구하는 끝없는 질타, 빠져나올 수 없던 성적인 학대의 경험들은 오히려 우리 삶의 토대를 근본부터 허물어 버리는 것 같습니다.

몸은 성인 마음은 어린아이

데이비드 A 시맨즈 목사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라’는 책에서 성인이 되었지만 울고 있는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가 존재하는 한 그 사람은 여전히 성인아이라고 표현합니다. 내면의 아이는 너무 수줍고 겁 많고 연약하고 자기혐오적이라 가정에선 성인이 된 내가 남편이나 아내에게 몸은 허락하되 속마음은 열어 보이지 못하게 하고, 관계 속에선 어울리긴 하지만 항상 내 의견을 말하지 못하게 하며 직장에선 꾸역꾸역 일은 하지만 중요한 책임을 맡지 못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성인이 된 내가 삶을 주도적으로 사는 게 아니라 내면의 상처받은 아이가 상황에 반응하는 대로 살아가게 되니 몸은 성인이지만 마음은 어린 시절에 갇힌 아이임에 틀림없습니다. 무엇보다 슬픈 일은 내면아이에 붙잡혀 과거에 머무는 동안은 한 번도 자유롭지 못했고 한 번도 온전히 내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과거가 현재의 우리를 형성한다는 데 이론의 여지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과거가 우리를 결정한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인간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널리 수용되는 세 가지 결정론이 근대과학의 토대였습니다.

과거의 족쇄 벗고 날아라

유전자가 우리를 결정한다는 다윈의 생물학적 결정론과 양육된 방식과 어린 시절의 경험이 우리를 결정했다는 프로이드의 심리적 결정론, 상황과 환경이 우리를 결정했다는 마르크스의 사회적 결정론이 그것입니다. 변화나 회복이나 기대에 찬 미래의 탄력도 없이 정말 우리는 결정지어진 삶을 사는 것일까요? 내일은, 내년에는 유전자나, 내면의 아이나, 환경이 만들어 놓은 이상의 삶을 살 순 없을까요? 과거의 올무에 얽매이지 않고 온전히 기능하는 인간으로 우리 앞에 펼쳐진 풍성한 삶을 언제쯤이나 누릴 수 있을까요?

제가 믿는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지금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을 수 있습니다. 아직은 과거에 사로잡혀 내면의 아이를 거부할 용기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동안의 자기연민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그때에는 캄캄했던 우리의 눈이 밝을 것이며, 막혔던 우리 귀가 열릴 것입니다. 그때에 비틀거렸던 우리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굳었던 혀는 풀려 노래할 것입니다(사 35:5∼6). 주 여호와의 신이 우리에게 임하면 마음이 상한 자가 아픔을, 과거에 갇힌 자가 두려움을, 모든 슬픈 자가 눈물을 기억도 하지 못할 날(사 61:1∼2)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대구 동아신경외과원장·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