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 때 벌써 본격 밭농사… 한반도 농경역사 다시 쓴다
입력 2012-06-26 22:21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고성 문암리 유적’(사적 제426호). 동해 바닷가에서 작은 언덕 하나 너머 구릉에 자리 잡은 이곳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신석기시대 유적지다.
2010년부터 선사유적 종합정비사업이 진행 중인 이곳에서 올해 발굴 작업을 시작한 지 한 달여 만인 4월 말. 조사팀은 ‘밭’으로 보이는 유적을 발굴했다. 밭은 생활 지층을 달리하는 상하 2개 층으로 돼 있었다. 만약 신석기시대 유적으로 확인되면 이는 한반도 신석기인들이 본격적으로 밭농사를 지었다는 확실한 증거로 뒷받침되는 것이다. 고고학계는 한반도 신석기인들이 농사를 지은 것으로 보지만, 이는 출토된 석기(돌괭이·뒤지개·보습)나 탄화 곡물(조·기장) 등을 통해 간접 추정한 것이었다. 따라서 가슴 벅찬 순간이었지만 기뻐하기에는 일렀다. 밭의 연대를 측정할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지루한 조사 작업에 들어간 지 한 달여 만인 5월 말, 조사팀은 쾌재를 불렀다. 하층 밭 가장자리에서 신석기시대 중기 유물인 수혈식(반지하식) 집터가 발견된 것이다. 이 밭이 신석기시대 중기(기원전 3600∼3000년) 유적임이 고고학적으로 뒷받침되는 순간이었다. 집터에선 신석기시대 중기의 전형적 유물인 짧은 빗금무늬 토기 파편까지 나와 조사팀을 흥분시켰다. 하층 밭 다른 곳에서도 신석기시대 유물인 돌화살촉이 나왔다. 깨알보다 작은 탄화된 조 1점도 나왔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6일 한반도 신석기시대 중기 밭 유적이 처음 발굴된 ‘고성 문암리 유적’에서 현장 설명회를 갖고 이 같은 사실을 발표했다.
신석기인들은 어떻게 밭농사를 지었을까. 밭이 위치한 곳은 바다가 걸어서 5분이 채 안되는 거리에 있다. 홍형우 학예연구관은 “해안가에 위치한 전형적인 신석기시대 주거지”라며 “언덕 뒤에 위치해 해풍을 막기에도 안성맞춤”이라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본 신석기인들의 밭이랑은 요즘의 것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상층 밭(1260㎡·380평)과 하층 밭(1000㎡·300평) 모두 이랑을 갖추었다. 이랑 형태도 뚜렷해 신석기인들이 지속적으로 농사를 지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이랑은 구획이 일정한 청동기 것에 비해 너비가 일정하지 않은 초보적 형태였다. 연대가 오래된 하층 밭의 경우 세로로 길게 이랑이 난 것, 혹은 장방형으로 고랑을 낸 것 등 형태가 더 원시적이고 복잡했다. 신석기시대 밭이 확인되지 않은 중국의 경우 ‘산파’(씨뿌리기)나 ‘화전’ 식의 농사법에 의존한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진일보한 형태인 것으로 해석된다.
수혈식 집터(5호 주거지)는 256×206×60㎝ 크기로, 구덩이를 판 반지하집이다. 2∼3인 가족이 거주할 만한 작은 크기다. 밭 바깥에서는 야외 화덕 6군데와 또 다른 신석기시대 주거지 4군데가 발견됐다. 상층 밭의 경우 관련 출토 유물이 없어 추가적인 연구 작업이 필요한 상태다.
김영원 문화재연구소장은 “신석기시대는 수렵 어로 중심이고 일부 밭농사를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며 “하지만 밭 유적이 나옴으로써 현재 시점에서 5000년 전에 신석기인들이 밭 중심 농경생활을 했다는 게 증명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가장 오래된 밭 유적은 청동기시대(기원전 1500∼400년)의 것이다. 특히 이번 문암리에서 발굴된 밭 유적은 중국 일본에서도 발견된 예가 없는 동아시아 최초의 신석기시대 밭 유적으로 추정된다.
고성=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