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 불법 산행… 자연도 사람도 다친다
입력 2012-06-26 22:01
설악산 비법정탐방로 단속 현장 동행
북한산, 설악산, 지리산 등 국립공원에서는 추락사, 심장마비, 익사 등으로 해마다 30명 안팎의 탐방객이 목숨을 잃고 300여명이 다친다. 샛길출입, 바위능선 산행, 모집산행, 음주산행 등 4가지 관행이 많은 안전사고를 낳는 주범이다. 게다가 그런 만용에 너그러운 우리나라 특유의 문화는 가벼운 처벌, 법 경시 풍조와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국립공원은 인력과 예산의 상당 부분을 안전사고 수습에 투입해야 한다. 지난 주말 국립공원관리공단 특별단속팀과 함께 설악산 용아장성 단속 현장을 동행 취재했다.
23일 새벽 4시 설악산 국립공원 수렴동 대피소. 13명의 특별단속팀이 라면으로 아침을 때운 후 등산화 끈을 조여 맸다. 치밀하게 짜여진 작전에 따라 1시간을 걸어서 용아장성 능선의 개구멍으로 향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특별단속팀 박용환 계장은 “개구멍은 10㎞의 용아장성 구간을 주파하려면 빠져 나가지 않을 수 없는 노루목과 같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단속현장=수렴동대피소에서 백운동 계곡 사이 왼쪽 옆으로 희미한 길의 흔적을 찾아 용아장성 능선으로 향했다. 큰비와 태풍으로 쓰러진 아름드리 전나무와 박달나무가 길을 가로막았다. 빽빽한 밀림을 연상시키는 숲에는 어른 가슴 높이의 직경이 1m20㎝, 높이가 50m는 족히 돼 보이는 전나무를 비롯해 고목들이 즐비했다.
맨 앞에 섰던 이원후씨가 길을 잘못 들었나 보다. “후미, 다른 길 알아보세요.” 베테랑도 길을 잃을 정도의 깊은 밀림이다. 길을 잃었다 싶을 때에는 지금껏 걸은 게 아깝더라도 확실한 길이 있는 곳까지 후퇴하는 게 상책이다. 박 계장이 오른쪽 옆에서 길을 찾았다. 숨을 헐떡이며 능선에 오르자 ‘용의 이빨’이라는 이름답게 험준하고도 날카로운 바위들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특별단속팀 팀원들은 개구멍 20m 밑의 비박장소에 삼삼오오 모여 전문산악인 출신인 박 계장의 바위능선산행 특강을 들었다. 특별단속팀 소속 직원들은 구조팀과 달리 대부분 등산이나 암벽 전문가들은 아니다. 버티는 범법자를 상대하려면 근육보다는 대화의 기술이 중요하기 때문에 50대 이상의 경험 많은 직원들이다.
일행이 불법 탐방객을 기다리는 동안 박 계장이 설치한 로프를 잡고 개구멍까지 올라가 봤다. 양 옆으로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인 데다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손과 발을 어느 하나라도 붙여 의지할 공간이 전혀 보이지 않는 곳들이다. 오금이 저려 왔다. 동행한 공단본부의 양기식 환경관리부장은 “암벽능선이 보여주는 조망은 모든 것이 내 발 밑에 있다는 정복감을 준다”고 말했다. 용아장성에서는 해마다 한 명 이상이 죽는다. 설악산사무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설악산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는 모두 7건으로, 이 가운데 4건이 출입통제구역에서 발생했다,
◇버티기 백태=4주째 이어진 주말 용아장성 입구 단속 사실이 알려진 덕분인지 이날 오전에는 불법 산행객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박용환 계장은 “지속적으로 단속을 하면 모집산행팀들은 등반 코스를 변경하거나 날짜를 바꾼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4주간 불법산행 특별단속의 적발건수는 모두 93건. 용아장성에서 27건으로 가장 많았다. 16일에는 봉정암에서 용아장성을 타고 내려오던 모집산행 일행 9명이 단속팀에 걸렸다, 가이드를 포함해 남자 5명, 여자 4명이었다. 23일 점봉산에서도 5명이 적발됐다.
단속에 걸려도 막무가내로 봐 달라고 하거나 협박을 하는 탐방객이 적지 않다. 박 계장이 설악산 용아장성에서 만난 한 등산객은 상의를 걷어 올리면서 배에 긴 칼자국을 보여줬다. “대장암으로 수술을 했는데 얼마나 더 살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딱 한 번 왔다. 봐 달라.” 박 계장은 그를 그냥 보내주고 말았다. 오재필 계장이 북한산 비법정탐방로에서 만난 한 등산객은 지고 있던 배낭을 낭떠러지 밑으로 던져버리고는 “나도 배낭처럼 떨어져 버릴 테다”라고 외쳤다. 오 계장 역시 그를 단속하지 못했다. 공단 관계자들은 단속만으로 안전사고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관리공단에 따르면 전국의 국립공원에서 해마다 안전사고로 20∼30명씩 사망하고 300∼500명이 다친다. 지난 3년간 사망사고는 추락사가 29명, 심장마비 등 신체결함이 27명으로 많은 편이다. 설악산에서는 10월에 추락사고가 잦다. 지리산에서는 8월 심장마비 등 지병이나 계곡 범람에 의한 익사를 조심해야 한다. 북한산에서는 겨울을 제외하고는 고르게 추락사고가 많다.
◇안전사고 부르는 4대 관행=공단에서는 모집산행, 음주산행, 샛길출입, 바위능선산행 등 4가지를 안전사고의 주요 요인으로 보고 있다. 특히 설악산의 경우 불법탐방로 방문이 주로 모집산행에 의해 이뤄진다. 설악산사무소는 모니터링을 통해 불법탐방로를 코스에 포함시킨 산행모집 공고를 낸 여행사 등에 가지 말라고 미리 경고한다.
이런 모집산행은 전문가이드들이 초보자까지 끌어들여 위험이 가중된다. 오재필 계장은 “여행사나 가이드가 안전에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산행도중 일행에서 뒤처지는 사람이 있어도 그냥 내버려 두고 간다”고 말했다. 심지어 단속에 걸릴 것에 대비해 미리 과태료 조로 8만원씩을 거두기도 한다. 산행을 무사히 마치면 그 돈으로 횟집 등에서 뒤풀이를 한다는 것이다. 양기식 부장 등 단속팀원들은 불법산행 가이드를 형사처벌하는 법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립공원 내 수목 훼손 행위 등은 벌금과 같은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또한 음주나 만용에 관대한 문화도 문제다. 나공주 탐방지원처장은 “안전사고가 나서 구조하다 보면 80%가 술 마신 탐방객”이라며 “술이나 탈진은 결국 무리한 산행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안전사고가 난다”고 말했다.
인제=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