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신인식 (3) 엎친데덮친 ‘결핵 말기’… 4년간 약 14만알 복용

입력 2012-06-26 17:54


초등학교 시절 뭐든 잘했다. 공부뿐 아니라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했다. 1등과 반장을 도맡아 했다. 학교를 늦게 간 만큼 배움에 대한 욕심이 큰 탓이기도 했고 다른 아이에 비해 월등히 큰 키와 목청 덕분이기도 했다. 그러던 졸업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늘 피곤하다 싶었는데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아팠다. 고민하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검사결과가 나오는 날 아버지와 함께 갔다. 의사는 나에게 잠시 나가 있으라고 했다.

“결핵 말기에 신경성 폐렴입니다. 6개월이나 더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집에 데려가 잘 먹게 해주시고 푹 쉬게 해 주십시오.”

진료실 밖으로 들려온 의사의 목소리였다. 가슴이 답답하고 어지러워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죽다니 내가 죽다니. 이제 공부도 일도 인정받고 즐겁고 신나는데, 죽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떤 운동을 해도 지치지 않던 강한 내가 아닌가. 그럴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학교를 포기할 수 없었다. 공부야말로 내가 살아갈 유일한 길이었다.

“제발 학교에 다니게 해주세요. 공부만 하게 해 주세요”

진료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 의사선생님께 말했다. 의사는 아무 말도 못했다. 당시 결핵 말기라면 열에 아홉은 죽던 시절이었다. 살려 달라는 게 아니라 학교에 다니게 해 달라고 비는 내가 안쓰러워 보였을까. 의사 선생님은 내 손을 잡고 긴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인식아. 진찰결과는 네가 들은 그대로다. 하지만 살고 죽는 건 어차피 하늘이 알아서 하는 일이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 약은 매일 매 끼니마다 한주먹씩은 먹어야 할 거다. 주사도 꽤 아픈데 매일 맞아야 한다. 약이 독해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그래도 해낼 수 있겠니?”

긴 싸움이 시작됐다. 언제 끝날지 분명하지 않지만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실 거라고 믿었다. 의사선생님은 먹고살기도 힘에 겨운 우리 집 사정을 알고 계셨다. 그 모든 약이며 주사를 무료로 주셨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버스로 병원을 오가는 일은 힘에 겨웠지만 단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빨리 나아야 이 모든 은혜를 갚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세상에 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분의 계획과 바람이 아니었다면 시력을 잃은 첫 번째 고난에 일찌감치 굴복하다 지쳐 흔적도 없었을 것이다. 그분 덕분에 오늘 이 시간이 있다. 힘든 순간이 많았지만 절망하지 않았다. 절망은 가장 쉬운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내가 6개월을 넘겼다. 또 한 해를 넘기고 4년이 지나던 어느 날 의사선생님이 환호성을 지르셨다.

“인식아, 네가 이겼다. 우리가 해냈어. 병이 다 나았다. 감쪽같이 사라졌다.”

4년간 약을 14만 알을 먹었다. 주사는 매일 한대씩 1400대 이상 맞았다. 돈을 내고 치료를 받아야 했다면 이미 오래전에 치료를 포기했을 것이다. 모든 치료가는 무료였고 병은 기적처럼 완치됐다. 그 의사 선생님과는 지금도 연락을 하며 지내는데 여든이 넘으신 선생님이지만 통화할 때마다 “인식아, 너는 내 삶의 기적이야” 하시며 어제 일처럼 기뻐하시곤 한다.

하나님께서는 지독히 큰 병을 주셔서 의사를 놀라게 하시는 분이고, 그 병을 고치심으로써 모두를 더 놀라게 하시는 분이다. 병 주시고 약 주시는 그분의 깊은 뜻을 서서히 깨달아 갔다. 그 무렵 나는 전화교환원을 하며 자신이 특별하고 대단한 아이인 줄 알았다. 하나님은 나를 고쳐서 제대로 쓰시길 원하셨다. 그래서 내게 병을 주시고 그걸 견뎌낼 힘과 이겨내는 기적을 주신 것이다. 이후 수많은 고난을 만나 내공이 쌓였기에 이젠 고난이 다가오면 “또 왔는가? 자네” 한다. 고난을 살피고 그에 맞는 대응을 한다. 잠시 기다릴 때도 있고 훅을 날리고 발차기를 할 때도 있다. 결국 고난이 제풀에 지쳐 달아난다.

정리=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