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오경아] 인간의 영혼이 닿는 정원

입력 2012-06-26 18:22


서른아홉에 방송작가를 그만두며 두 딸을 데리고 정원공부를 하러 7년이나 유학을 다녀왔다고 하면 대부분은 나에게 묻는다. “대체 이유가 뭐였나요?” 무척이나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의 눈빛이다. 그런데 이 분들에겐 어처구니없겠지만 실은 난 떠날 때가 아니라 돌아와야 할 때서야 그 이유를 생각한 듯싶다. 난 왜 하던 일을 그만둬야 했을까? 난 왜 정원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싶었을까?

영국에서 돌아와 처음 한 일은 특별한 전시를 기획한 것이었다. ‘도시의 정원사들!’ 도시를 떠날 수도, 환경을 바꿀 수도 없다면 정원이 도시로 찾아가자. 정원이 정말로 필요한 사람들은 전원 속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도시 속에 살며 도시생활을 싫어하지만 그래도 떠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나라는 것도 그때서야 확실히 알았다.

습관적 탄성으로 방송국과 집을 오갔던 나날, 따놓고 며칠 지나버린 오이처럼 물렁거리는 신선할 것 없는 일들과 갈수록 날카로워지는 내 몸의 신경세포들. 그때 난 끊어내지 않으면 터져버릴 것 같은 팽창을 느꼈고 그걸 막을 길이 정원이고 유학이라고 생각했던 듯싶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나만의 일도, 우리나라만의 상황도 아니다. 도시가 팽창되고 사람이 도시로 몰리는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막을 길 없는 듯하다. 심지어 세계에서 국민 1인당 정원면적이 가장 넓다는 영국에서도 정원이 준다고 걱정이다. 하지만 도시 속 정원이 정말 줄고만 있을까.

가든 디자이너로서 내가 바라보는 정원은 분명 진화 중이다. 개인주택의 내 집 정원이라는 전통의 틀이 깨지고 있긴 해도 대신 다른 정원의 형태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이 함께 즐기는 도심 속 공원도 한 모습이고, 또 지역인이 함께 모여 일구는 커뮤니티 정원, 일하면서 정원을 즐기는 일터정원이 그 진화 속에 있다.

미국 시카고식물원은 정원사들이 식물원에서만 일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도시 주거지를 찾아가 지역인이 커뮤니티 정원을 함께 만들 수 있도록 디자인 해주고 가드닝 노하우를 지속적으로 가르친다. 그런가 하면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는 구글은 직원이 상주하는 건물의 옥상에 채소정원을 만들었다. 전문정원사가 관리하지만 대부분 구글 본사 직원이 자원봉사를 하고, 그 대가로 자신이 직접 수확한 작물을 손에 들고 퇴근한다.

또 글로벌 음료회사인 펩시의 경우는 회사 안에 대규모 조각공원을 만들었다. 1971년부터 1986년까지 CEO를 맡았던 켄들 회장의 결단 덕분이었다. 그 외에도 종이회사인 와이어하우저 본사의 정원, 잡지 회사인 선셋 매거진 본사의 정원도 정원 속 직장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출하고 있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문명이 발달할수록 우리 인간의 영혼은 정원 일을 향해 뻗을 것’이라고 17세기에 예언했고 그의 예언은 정확하게 맞아가는 듯하다. 전 세계는 정원의 진화가 한창이다. 그 진화에 우리도 이제는 눈길을 돌려보자.

오경아(가든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