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집안의 두루미

입력 2012-06-26 19:11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그림 속 두루미가 뜻밖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작품은 단원 김홍도가 그린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이던 것이 국립생물자원관이 열고 있는 ‘옛 그림 속 우리 생물’ 전에 출품됐다. 화제(畵題)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세 정승을 합친 벼슬과도 바꾸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림은 대자연과 일상의 삶을 좌우로 배치했는데, 오른쪽 기와집 쪽으로 앵글을 당기면 문제의 두루미를 볼 수 있다. 노송 아래 바깥채에 양반 몇이 모여 있고, 그곳을 향해 술상을 들고 가는 여인 뒤를 두루미 두 마리가 바짝 따르는 장면이다. 집 뒤쪽에는 사슴이 노닐고, 안채 마당에는 짓궂은 개가 닭을 쫓고 있다.

두루미가 어떻게 가금(家禽)으로 길러졌을까. 철새로 여겨지는 조류를 애완동물처럼 다룬 데 대해 “두루미 깃털을 잘라내 못 날게 했다”는 설명도 있다. 홍만선이 쓴 ‘산림경제’에는 두루미를 기르는 테크닉이 기술돼 있으며, 일제 강점기에 와서는 아예 부업으로 장려되기도 했다. 생활 속으로 바짝 다가선 것이다.

그러나 겸재 정선의 그림 ‘풍파소처(風波少處)’를 보면 좀 다르다. 왜관의 베네딕도수도원에 있는 이 작품은 버드나무 아래서 선비가 배를 타고 낚시하는 장면을 담았다. 말 그대로 풍파가 없는 평화로움을 드러낸 것이다.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가족들이 배 가장자리로 밀려난 대신 두루미 한 마리가 고고한 자태로 선비의 옆을 지키는 장면이다.

그래서 반려동물의 역할보다 소나무를 즐겨 그리고, 매화를 집안에 기른 것처럼 선비의 상징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서애 유성룡이 진주 선비 최영경을 찾았을 때 어깨에 학을 얹고 나왔다는 이야기와도 통한다. 세속을 등진 선비들이 학계(鶴契)를 모아 벗으로 삼을 정도였다.

이들은 학의 볏이 고운지, 학성(鶴聲)이 멀리 떨치는지, 학 눈이 멀리 보는지 등 열 가지를 놓고 겨뤘다고 하니 고상한 취미생활을 즐겼다. 아침 꽃이슬로 볏을 매일 닦아주면 선홍빛이 더하고, 시 읽는 소리를 많이 들은 눈일수록 오묘하다는 등의 양학(養鶴)도 성행했다.

이쯤이면 선비들이 지조를 상징하는 동물로 키우던 것이 더러는 가금으로 눌러 앉을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아무리 현대라고 해도 두루미의 겉모습만 보았을 뿐 눈을 맞춘 적도, 소리를 들은 적도 없으니 선비의 길에서 한참 벗어나고 말았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