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의 시편] 디자인 서울과 교회

입력 2012-06-26 17:58


‘디자인 서울’로 인해 서울의 많은 간판들이 세련된 옷을 입었습니다. 너무 돌출되지 않으면서도 주변 경관과 어울리고 차분해지면서 도시의 가치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디자인만 생각한 나머지 간판으로서의 실용적 측면은 간과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중에 교회 간판들이 더욱 그렇습니다. 서울의 모든 교회 간판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우리 동네 간판들은 그렇습니다. 색깔이나 크기에서도 간판의 기본인 명시도가 많이 떨어져서 보이지 않으니 과연 간판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교회는 교인들만 찾지 않습니다. 택배 기사도, 우편배달부도 찾습니다. 결혼식 하객들도 몰려오고 교회 앞마당에서 약속을 잡기도 합니다. 그 모든 사람들이 찾기 쉽도록 하는 것이 간판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디자인 서울이란 도시의 모든 기능에 예술적 가치를 덧입힌 것일 텐데 순수미술에 치우치면 기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순수미술품을 보려면 미술관에 가면 됩니다. 그러나 간판은 기능이 강조되는 실용적인 것입니다. 순수미술이 아닌 응용미술적인 면이 강해야 간판은 비로소 기능할 수 있습니다. 순수미술을 기능에 도입한 것이 디자인이기에 이것들은 우리의 일상에서 늘 만날 수 있습니다. 가전제품이든 길거리에 즐비한 빌딩이든 눈에 띄는 모든 것이 응용미술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디자인과 기능은 적절하게 조화돼야 합니다. 기능은 뛰어난데 디자인이 떨어지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지 못할 것이며 디자인은 뛰어난데 기능적으로 떨어진다면 그 역시 외면당할 것입니다.

단순히 간판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의 신앙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신앙이 교회 안에 갇히고 수도원 또는 기도원 안에 머무르는 것은 순수하고 거룩해 보이기는 하나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습니다. 미술관에 걸려 있는 그림 정도지 삶에 기능적으로 적용되고 삶을 바꾸는 역동적인 힘이 되지는 못합니다. 아무런 영향력도 없는 신앙으로는 세상이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잘 보여야 합니다. 명시도를 높여 멀리 있어도 눈길을 끌만큼 선명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고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사람들에게 읽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신앙을 갖지 못하면 금고에 갇혀 있는 보석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은 ‘기도실과 세상의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순수하면서도 세상을 움직이고, 고결하면서도 땀내 나는 삶의 현장에 녹아 있는 신앙은 불가능할까요. 화려한 예배당 불빛보다 더 아름다운 교회의 빛은 어려운 것일까요. 세련된 디자인으로 옷 입은 교회가 디자인 서울과 오버랩되어 현기증이 납니다. 아, 선명하지 못한 교회 간판보다 더 흐릿한 교회여!

<산정현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