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환의 삶과 신앙] 우리가 꿈꾸는 기적
입력 2012-06-25 18:24
“나를 감싸고 있는 밤은/ 온통 칠흑 같은 암흑/ 억누를 수 없는 내 영혼에/ 신들이 무슨 일을 벌일지라도 감사한다/ 잔인한 환경의 마수 속에서/ 나는 움츠리거나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내리치는 위험 속에서/ 내 머리는 피투성이였지만 굽히지 않았다/ 분노와 눈물의 이 땅을 넘어/ 어둠의 공포만이 어렴풋하다/ 그리고 오랜 재앙의 세월이 흘러도/ 나는 두려움에 떨지 않을 것이다/ 문이 얼마나 좁은지/ 아무리 많은 형벌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중요치 않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영혼의 선장”
영국의 시인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1849∼1903)의 ‘인빅투스(Invictus:정복할 수 없는)’라는 시다. 헨리는 일생을 통해 많은 불행을 겪었던 사람이다. 결핵의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단해야 했고 온갖 병마들과 씨름했다. 가족들과의 관계도 불행했고 결국 60세 되지 않아 생을 마감했다.
그런 그가 이 시를 통해 보이는 삶에 대한 강인한 투지는 참으로 놀랍다. 특히 마지막 연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은 이 세상의 어떤 시련도 결코 굴복시킬 수 없는 영혼의 자유를 노래한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며 언제 들어도 우리들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남아프리카의 대통령을 지낸 넬슨 만델라는 27년간의 감옥생활을 이 시와 함께 지냈다. 그는 이 시와 함께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불가능의 가능성, 흑과 백이 함께 손을 맞잡고 용서와 화합으로 활기찬 조국의 미래를 건설해 나가는 기적 같은 미래를 꿈꾸었는지 모른다.
영혼은 고난을 통해 단련돼 나온다. 시련과 고통이 풀무불이 돼 마치 연금술사의 손을 통해 제련된 새로운 금속같이 단단하고 빛나는 영혼으로 존재의 중심에 자리 잡는다. 이 영혼은 우주의 나무(Axis Mundi)가 돼 우주의 영과 소통할 뿐 아니라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긍정적 영향력을 미치는 ‘위대한 영혼’으로 탄생한다는 것이다.
만델라의 삶이 그랬고 인도의 국부인 간디의 삶이 그러했다. 고난 속에서도 위대한 혼의 향기를 잃지 않고 인도의 독립과정에서 영국인에게조차도 깊은 영혼의 영향력을 행사하며 비폭력의 저항 운동을 이끌고 혼의 자유를 사랑하며 그 삶을 일구어냈다. 그를 일컬어 영국인과 인도인들은 위대한 영혼 ‘마하 트마’라고 불렀다.
작년 일본의 대지진과 쓰나미의 참사를 겪은 후 가깝게 알고 지내던 일본인 교수로부터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비록 지진과 쓰나미로 많은 사람들의 목숨과 재산을 잃었지만 이 불행을 통해 일본 사람들의 혼이 새롭게 깨어나고 있다는 것이 이 불행을 통해 받은 복일 것이라고. 특히 일본 청년들의 눈빛들이 살아나고 있다는 것이 큰 불행을 겪으며 발견한 빛나는 축복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고난은 우리를 깨어나게 한다. 더 큰 영혼의 빛깔로.
어제 우리는 한국전쟁 발발 62주년을 맞았다. 우리들의 부모들과 선배들 그리고 세계 67개국의 인적 물적 지원으로 우리들의 땅을 지켜냈기에 오늘의 삶이 있고 지금의 풍요를 즐길 수 있게 됐다. 62년 만에 이룬 기적 같은 한국의 변화는 세계인을 놀라게 한다. 그런 대한민국이 지금 매 35분마다 한 사람씩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자신의 영혼을 파멸시키는 자살률 세계 1위의 나라가 되었다. 그 중에 20대 젊은이들의 자살률이 가장 높다.
지난 62년, 그 사이 우리들의 영혼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파우스트가 경험했던 풍요와 바꾼 영혼의 가난한 모습을 우리 모듬살이가 경험하고 있지는 않은가. 역경지수를 잃어버리고 조금의 고난 속에서도 쉽게 삶을 포기하려 하는 오늘의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우리가 꿈꾸는 삶의 기적, 결코 포기할 수도 굴복시킬 수도 없는 영혼의 자유, 영혼의 힘, “인빅투스”를 외치고 싶다.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목회상담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