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만열] 국제사회에 한국을 알리려면
입력 2012-06-25 18:45
“역사와 문화 담겨 있는 고전작품 소개가 지름길… 한국문학 전문가 키워야”
국제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고 특히 한국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어하는 진지한 외국의 지식인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수요에 부응해 한국에서 많은 노력을 전개하고 있지만 대부분 경제적 성취나 기술적 발전, 혹은 주변 국가와의 분쟁이라는 맥락 속에서 한국의 입장을 강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어떤 나라를 소개할 때 표피적 접근, 즉 군사력이나 경제력을 강조하는 것도 나름대로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선진국으로 진입한 한국에 대해서는 이런 접근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경쟁 상대인 다른 선진국들이 군사력이나 경제력, 기술력에서 우월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제 본질적 접근, 예를 들면 역사와 문화를 통해 한국과 한국인을 소개하고 평가받아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는 기본적으로 문학, 특히 고전문학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 고전문학을 국제사회에 소개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미국에서 한국학은 동아시아학에 속해 있는데, 동아시아학 연구는 유럽에 관한 연구보다 크게 뒤처져 있다. 동아시아학 안에서도 한국학은 중국학이나 일본학에 비해 한참 뒤져 있다. 하버드대에서 한국학 교수진은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문학 교수는 한명밖에 없지만 그나마 다른 학교에 비해서는 조건이 좋은 편이다. 명문대인 프린스턴이나 예일대는 한국학 전공 교수가 아예 없다.
한국 문학을 소개하는 방식도 이제는 정공법을 택할 필요가 있다. 1970년대나 80년대에 한국은 한국 민중의 일상에 근접한 문화를 소개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했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국가의 역량이 부족했던 시절인 만큼 단기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정작 고전문학은 번역되거나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다. 일부 시조나 향가, 판소리 등의 구비문학이 소개되고 ‘충’이나 ‘효’와 같이 중요한 개념이 소개된 적이 있지만 그런 작품의 역사적 배경, 사회모순 또는 작자가 직면했던 시대 상황은 다뤄지지 못했다. 단지 “한국은 순수한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국내적으로는 국가 홍보를 위해 뭔가 했다는 자료로 사용될 수는 있겠지만 궁극적인 차원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20세기까지 한국 문학 작품은 대부분 한문으로 돼 있다. 그러한 전통을 먼저 소개하지 않을 경우 한국 고전문학에 관한 소개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 중국 문학이나 일본 문학의 경우 한문을 잘하는 학자가 있지만 한국 문학의 경우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결국 한국 고전문학을 제대로 소개하기 위해서는 한문을 전공한 한국 문학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이처럼 한국의 문학, 특히 고전문학을 국제사회에 소개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결과 미국에서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존재 자체를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삼성이나 현대는 알지만 그것이 한국 기업인지 아닌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유럽은 더 심각하다. 지방에 있는 대학이나 고교 세계문학 교과서에는 중국이나 일본 작품은 반드시 소개가 되지만 한국은 언급 자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이 무식하거나 오만해서라기보다는 한국이 스스로를 소개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한국은 자기 소개를 위한 본질적이고 적극적인 접근, 즉 고전문학을 소개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해야 한다. 동아시아에 관심을 갖고 있는 미국의 모든 대학에 한국 역사와 고전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배치될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물론 이러한 모든 작업의 전제조건이 한국인이 한국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 그리고 한국 고전문학에 대한 국내적 차원의 지원과 성원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만열(경희대 교수·비교문화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