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샘] 아들에게

입력 2012-06-25 18:44

死去元知萬事空

但悲不見九州同

王師北定中原日

家祭無忘告乃翁

죽으면 만사 헛됨을 원래 알고 있지만

구주의 통일을 못 보는 것이 슬프구나

우리 군대가 북으로 중원을 평정하는 날에

제삿날 네 아비에게 고하는 걸 잊지 말거라

육유(陸游 : 1125∼1209) 시아(示兒) ‘검남시고(劍南詩藁)’


남송의 애국 시인 육유가 임종 때 남긴 시이다. 시인의 애국적 정열이 느껍다. 그러나 시인의 소원과는 달리 남송은 금을 정벌하여 고토를 회복하지 못하고 원나라에게 망하고 만다. 육유의 여섯 아들은 결국 아버지 제삿날 기쁜 소식을 올리지 못하고 말았겠지만, 800년 전 이 시인의 불꽃은 우리 가슴에 옮겨 붙는다.

구주(九州)는 상고 우(禹)임금이 중국을 9개의 주로 나눈 데서 유래한 말로 중국 전체를 가리킨다. 왕사(王師)는 주나라 때 천자는 왕으로, 제후는 공후백자남(公侯伯子男)으로 차등하여 부른 데서 기원한 말로 천자의 군대를 말한다.

한시에는 한 사람의 일생을 보여주는 시들이 있다. 정암 조광조가 사약을 받고 ‘나라 걱정하길 집안 걱정하듯 했고, 임금 사랑하길 아비 사랑하듯 했네(憂國如憂家, 愛君如愛父)’라고 읊은 것이나, 매천 황현이 자결에 앞서 ‘추등에 책 덮고 천고를 회고해 보니, 인간세상 지식인으로 살기 어렵구나(秋燈掩卷懷千古, 難作人間識字人)’라고 노래한 것은 모두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일생을 스스로 돌아본 시이다.

또 두보가 ‘촉상(蜀相)’이라는 시에서 제갈공명의 일생을 요약하여 ‘세 번이나 초려를 찾아 천하의 계책을 묻자, 두 군왕을 섬기며 노신의 마음으로 보답했네(三顧頻煩天下計, 兩朝開濟老臣心)’라고 한 것이나, 두목이 항우가 자결한 오강정(烏江亭)에서 ‘강동의 자제 중에는 뛰어난 인재가 많으니, 온 힘 기울여 다시 싸우면 승패를 알 수 없었으리(江東子弟多才俊, 卷土重來未可知)’란 말로 항우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시는, 남이 한 사람의 일생을 품평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나는 종당에 무슨 시를 남길 것이며, 남들은 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임진왜란도 6·25도 떠오르는 6월, 그 6월이 가기 전에 한 번 생각해 볼 명제이다.

김종태(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