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 정신건강 증진 대책] 정신병력 이유로 보험 가입 차별하면 처벌받는다
입력 2012-06-24 21:52
#사례 1. 30대 중반 주부 A씨는 몇 년 전 시부모와의 갈등으로 모 대학병원 정신과를 찾았다. 시부모 얼굴을 보면 이유 없이 짜증이 치밀어 감정조절이 어려웠다. 다행히 가벼운 신경증은 두세 차례 부부면담 후 사라졌다. 병원에 다녀온 사실조차 잊고 있던 A씨는 최근 보험회사로부터 “정신질환자여서 보험 가입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사례 2. 지난해 정신과를 찾은 30대 직장인 B씨.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었지만 마음이 물 먹은 솜처럼 늘 찌뿌듯했다. ‘신경증적 우울증’ 진단을 받은 그는 항우울증 치료제를 처방받고 두 달여 만에 말끔히 나았다. B씨도 약물 치료 사실을 밝혔다가 보험 계약을 거부당했다.
릐정신과 간다고 다 ‘정신질환자’ 아니다=A, B씨 경우처럼 그동안 정신과 상담 경력은 일종의 ‘주홍글씨’였다. ‘정신병자’ ‘위험한 존재’라는 편견에 시달렸을 뿐만 아니라 의료법, 도로교통법 같은 70여개 법률에 따라 운전면허증을 따고 보험에 가입할 때도 차별받았다.
사회적 낙인은 일반인을 정신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국내 정신질환 경험자의 상담 비율은 15.3%에 불과하다. 미국(39.2%), 호주(34.9%) 등에 비해 현저히 낮다.
보건복지부가 24일 정신질환자 범위를 대폭 좁히는 ‘정신건강증진종합대책’을 발표한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상담과 가벼운 약물 치료 환자를 정신질환자 범주에서 제외함으로써 정신건강 서비스의 문턱을 낮추고자 한 것이다. 우선 정신과에서 상담(1단계)을 받을 때는 아예 병명을 빼도록 했다. 우울증 치료를 받았더라도 증상이 경미하면 ‘일반상담’으로 기록된다. 가벼운 약물치료(2단계) 역시 기록상 병명은 남지만 법적 정신질환자 분류에서는 제외했다. 대신 정신질환자는 ‘전문가가 일상생활이 불가능해 입원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3단계)로만 한정했다.
정신질환자 분류에서 제외된 1, 2단계 환자의 경우는 원칙적으로 차별이 금지된다. 복지부는 보험사가 정신질환 병력을 이유로 가입 및 보험금 지급 등에서 차별할 경우 처벌조항을 신설키로 했다. 또 차별을 당한 피해자 구제절차도 검토 중이다.
새 분류에 따르면 현재 519만명인 정신질환자(2011년 기준)는 획기적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이민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정확히 계산하긴 어렵지만 정신질환자의 3분의 2는 1, 2단계에 속하는 가벼운 환자”라며 “법적 정신질환자는 3분의 1(170만명)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릐내년부터 ‘마음 검사’ 받는다=정부 대책은 치료보다 예방 및 질 관리 쪽에 방점이 찍혔다. 현 정신보건법은 정신건강증진법으로 바뀌고, 내년부터는 전 국민이 일생에 걸쳐 정신 건강검진을 받도록 했다. 마음 상태를 점검해 병인(病因)을 조기에 발견하자는 취지다.
방식은 우편을 이용한 지면검사를 택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대상자에게 검진도구를 우편으로 보내면 당사자는 답을 쓴 뒤 이를 공단에 보내면 된다. 본인이 쓰는 게 원칙이며 미취학 아동의 경우 부모가 작성한다. 결과는 본인에게만 우편으로 알려주게 돼 있다. 따라서 지역 정신보건센터 등의 도움을 받을지 여부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실시 횟수는 미취학 2회, 초등1~고교3년 4회 등 만18세까지 총 6회. 이후 20대에는 10년에 걸쳐 3회, 30대 이후에는 2회씩 검진 받는다. 검사 연령은 확정되지 않았다. 현재 전문가들로 꾸려진 태스크포스팀이 한국인에 맞는 연령대별 정신건강 검사도구를 개발하고 있다.
릐자살 어떻게 줄이나=우리나라는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31.2명(2010년 기준)으로 자살률 1위국. 정부는 자살률을 획기적으로 낮추기 위해 자살 미수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자살 시도 후 응급실에 실려 오는 환자는 한해 4만명에 이른다. 이들 중 16%는 1년 이내에 자살을 재시도하는 자살 고위험군. 하지만 대부분 응급 처치를 받은 뒤 별도 상담이나 치료 없이 방치돼 왔다. 자살 미수자의 성별과 연령, 자살 이유 등에 대한 추적 조사도 이뤄진 적이 없다.
정부는 각 병원 응급실과 연계해서 자살 미수자들에게 병원 정신과 상담을 받도록 권유하고 본인이 동의할 경우에는 지역 정신보건센터 및 사회복지기관과 연계해 지속적으로 돕기로 했다. 또 자살자의 유가족, 친구 등에 대한 상담도 강화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현재 183개 지역 정신보건센터를 230여개 정신건강증진센터로 확대 개편하고, 정신건강 정책을 개발하는 국립정신건강연구원을 신설하기로 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