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윤연] 제2연평해전과 교전규칙
입력 2012-06-24 18:54
제2연평해전 10주년을 맞이하면서 당시 국방부, 합참, 청와대의 안보라인에 있었던 책임자들이 상황조치를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다. 교전규칙에 따른 적법한 조치를 했느냐가 문제다. 교전규칙은 문자 그대로 적군과 아군의 전투에 관한 규칙이다. 전투를 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면 되지, 무슨 규칙이 필요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의도 도발엔 현장 자위권
교전규칙에는 전시 교전규칙과 평시 교전규칙이 있다. 한반도에 전쟁이 발생하면 한미연합사 작전계획이 발효되면서 한미연합전력은 북한과 전쟁을 하게 된다. 전시 교전규칙은 이때 선포되며 포로에 관한 문제, 전쟁 중이지만 사용해서는 안 될 무기, 무차별 사격구역의 선정 등 제반사항이 포함된다.
평시 교전규칙은 제2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등 북의 평시 도발에 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규정한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국군의 평시 교전규칙은 휴전 후 유엔군사령관에 의해 정해졌다. 당시 유엔군사령관에 의해 정해진 평시 교전규칙은 적 도발 시 어떻게 대응하느냐보다 우발적 무력충돌 발생 가능성을 줄이고 예방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유엔군사령관은 휴전을 반대하고 북진통일을 여전히 주장하고 있었던 이승만 대통령의 대한민국 군대를 남쪽에 묶어놔야만 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시 육상 군사분계선에 대해서는 양측이 합의를 보았으나 해상 경계선 합의는 실패했다. 연해수역(coastal waters) 범위와 관련하여 공산 측은 12해리, 유엔군 측은 3해리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당시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은 8월 30일 우리 해군의 북쪽 경비구역을 확정하기 위해 서해북방한계선(NLL)을 결정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말하는 NLL이다.
최근 제2연평해전과 관련된 논쟁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적의 도발이 우발적이냐 의도적이냐다. NLL 근처에 어장이 형성되면 중국 어선, 북한 어선, 북한 경비정이 뒤범벅될 때도 있다.
어떤 때는 NLL선상에 부유물이 있을 경우 북한 함정이 식별차 내려오기도 한다. 육상의 휴전선과는 달리 바다에는 그어진 선이 없기 때문에 북한 함정이 몇 백 m 정도 남하할 수도 있다. 이 경우가 우발적인 NLL 침범이다. 제2연평해전 당일 북한 경비함 684와 388정은 NLL 주변에 어선도, 부유물도 없었는데 전속력(23노트)으로 NLL 남쪽 6㎞까지 내려와 아군 참수리 357정에 포를 겨누었다. 분명한 의도적 도발이었다.
상부에서 “확전 말라” 지시
둘째, “먼저 쏘지 마라” “확전되지 않도록 하라”던 상부의 명령이다. 교전규칙상 NLL을 고속으로 불법 남하해서 우리 해역에 들어와 포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 적 함정은 현장지휘관이 자위권 차원에서 선제공격할 수 있다. 참수리 357정은 “먼저 쏘지 마라”는 상부의 명령 때문에 적함의 선제포격을 받고 가라앉았다. 적이 아군을 공격하기 위해 함포를 겨누는 것을 보고도 북 경비함 684를 밀어내려다 근거리에서 참변을 당한 것이다. 교전규칙에 적의 공격을 받으면 인근에 위치한 아군 함정은 NLL 북쪽까지라도 북한 함정을 추적 격파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 있다. 확전이 두려워 응징을 못한다면 군대의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다.
셋째, 정보의 중요성이다. 정보 없이 작전을 하는 것은 눈감고 싸우는 것과 같다. 통신감청부대의 특수정보(SI:Special Intelligence)에는 적함의 포격이 예상되어 있었다. 참수리 357정이 적의 포격이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사전에 연락받았다면 돌진해 오는 북한경비함 684에 무리하게 다가설 리가 없다.
제2연평해전이 일어난 지도 10년이 흘렀다. 서해에서 순국한 6명의 이름을 딴 윤영하함, 한상국함, 조천형함, 황도현함, 서후원함, 박동혁함이 부활하여 지금은 서해에서 우리 바다를 지키고 있다. 조국의 바다를 지키다 순국한 영웅들의 혼을 달래기 위해 해군용사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북쪽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제2연평해전 10주년을 맞아 순국용사들의 영혼을 위로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파도와 싸워가며 해상경계에 전념하고 있는 해군 장병들의 건승을 기원한다.
윤연 전 해군작전사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