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20-50클럽과 행복지수
입력 2012-06-24 18:54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병조판서 오대익의 71세 생일을 축하하는 글에서 행복을 두 가지로 분류했다.
하나는 열복(熱福). “외직에 나가 장군이 되어 깃발을 세우고 젊은 여인들과 즐겁게 놀다가 내직으로 들어와 높은 가마를 타고 조정에 들어가 정사를 결정하는 것을 열복이라고 한다.” 화끈한 행복으로 속세에서 출세하고 성공하는 것을 일컫는다.
또 한 가지는 청복(淸福)이다. “비록 깊은 산속,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곳에 살고 있지만 푸른 계곡물을 바라보며 발을 담그고 예쁜 꽃과 나무들을 벗하며, 내 인생의 사소한 데서 의미를 찾는 것이야말로 진정 청복이다.”
작은 것에서 스스로 즐거움을 찾는 소박한 행복을 설파했다. 다산은 그러면서 열복을 얻는 사람은 많지만 청복을 누리는 사람은 드물다고 했다.
슬로 라이프(느리게 살기) 운동 제창자이자 ‘행복의 경제학’ 저자인 쓰지 신이치 교수는 경제 때문에 인간이 불행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구성원 모두가 보다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갖춘 ‘행복의 경제’를 만들어 갈 때라고 역설한다. 하루하루를 급박하게 살기보다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주변 사람들과 유대를 쌓고, 느린 시간을 살 때 행복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그제 인구 5000만명을 돌파하면서 ‘20-50클럽’(1인당 소득 2만 달러, 인구 5000만명)에 가입했다고 한다. 일본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영국에 이어 세계에서 7번째다. 소득수준이 선진국 문턱인 2만 달러를 넘은 데 이어 인구 규모면에서도 강국에 진입해 독자적 내수시장을 갖추게 됐다.
경제력은 선진국 반열에 올랐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얼마 전 유엔이 측정한 행복국가 순위를 보면 우리나라는 156개 조사대상국 중 말레이시아나 태국보다 뒤처진 56위에 머물렀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양극화가 심화돼 더 먹고살기 팍팍해진 탓이리라.
행복감의 크기는 경제적 여건보다 정치적 자유, 부정부패 부재 같은 사회적 요소에 좌우된다는 유엔 분석도 있다. 측근 비리에 휩싸여 임기 말 레임덕 증후군을 어김없이 보여주고 있는 현 정부, 한 달 가까이 국회 문도 안 열면서 표심에만 혈안이 돼 정쟁(政爭)을 일삼는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