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부부생활- 그 그림, 다르지만 닮았다
입력 2012-06-24 17:51
김차섭-김명희 부부화가 생애 첫 동시에 개인전 눈길
‘한국 리얼리즘 회화의 재조명.’ 7월 13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전시의 주제다. 이 전시에는 두 명의 작가가 참가했다. 김차섭(72)과 김명희(63) 화백.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는 두 사람은 부부다. 강원도 춘천의 폐교에서 20년 넘게 작업하고 있는 이 부부가 한 갤러리에서 전시장 층별로 각각의 개인전을 열기는 처음이다.
두 작가는 36년 세월 동안 부부로 생활했지만 각자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김차섭 작가는 신비한 세계를 탐구하는 작업을, 김명희 작가는 유년 시절의 그리움을 표현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고 했던가. 남편이 끌어주고 아내가 밀어주는 부부의 작품은 언뜻 보기엔 다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닮았다.
김차섭 작가의 작품 주제는 크게 두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인간 문명을 넘어선 초월적 세계에 대한 탐구와 서구 중심적 시각에 대한 비판이다. 신작 ‘파이(π)의 창문’은 물에 잠겨 저마다의 모양을 지닌 둥근 자갈을 극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자갈의 둘레가 파이(π)처럼 인간의 수학적 도구로는 측정할 수 없는 신비로운 존재라는 것이다.
1993년부터 시작한 ‘역(逆) 지도화’ 작업은 지도를 거꾸로 표현함으로써 동남아시아 문명의 가치를 제시했다. 예부터 풍부하고 따뜻한 환경의 상징인 남향이 중요하게 여겨졌듯이, 남쪽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따스하다. 서구 중심적 세계관을 뒤집는 작가의 메시지는 한민족의 자긍심을 표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양복을 차려입고 생경한 표정으로 서 있는 ‘자화상’도 인상적이다.
김명희 작가는 폐교의 버려진 칠판 위에 오일 파스텔로 그림을 그린다.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세계 곳곳을 떠돌아다닌 작가는 이에 대한 추억을 칠판 그림으로 재현하고 있다. 1976년 결혼한 후 미국에서 살게 된 그는 타국에서의 삶을 ‘뿌리뽑힘(Dislocation)’이라는 제목으로 작업했다. 2005년부터는 유목적 생활에 역동성을 불어넣는 작품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최근작 ‘분수놀이’를 보자. 먼저 칠판에 그림을 그렸다. 화면의 주인공은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나 자화상이다. 그런 다음 작가 자신의 상상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순간을 구현하기 위해 양 옆에 스크린을 설치했다. 스크린에서는 분수의 움직임을 담은 영상이 나온다. 작가는 이런 작업을 통해 마치 옛 추억 속 한 장면이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효과를 전달한다.
김차섭 작가의 에너지는 짜릿한 전류처럼 강렬하고, 김명희 작가의 열정은 순박하면서도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부부는 살아갈수록 닮는다고 한다. 둘이 하나가 된 것처럼 작품도 자신들도 모르게 조금씩 닮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풍이 닮아가는 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삶에 대한 시선이 온화하면서도 서정적으로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02-519-0800).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