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감사지수를 높이자
입력 2012-06-22 18:16
에베소서 5장 20절
사람의 삶을 좌우하는 데는 지능지수(IQ)가 중요하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그 보다 감성지수(EQ)가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모두 옳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떤 지수가 중요할까요? 저는 그것을 감사지수(TQ)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 그리스도인을 볼 때 그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감사의 정도는 대부분 믿음과 비례합니다. 나쁜 나무에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좋은 나무에서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바른 그리스도인의 입술에서 계속되는 불평과 불만이 나올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어떻게 감사해야 할까요?
복음서에 예수님이 “감사하나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두 번 나옵니다.
첫 번째 감사는 고라신과 벳새다 고을에서였습니다. 마 11:20∼26절 말씀에 그 말씀의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그 곳에서 가장 많은 권능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 지역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었기에 감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마 11:25∼26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환경이 어려워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감사할 일이다.
두 번째 감사는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에 있을 때입니다. 깊은 슬픔과 절망이 사람들을 감싸고 있을 때 예수님은 감사했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1장 40∼41절에 이렇게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그렇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구원받지 않은 세상 사람들과 감사하는 조건이 달라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좋을 때, 감사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 언제 감사했느냐고 하면서 불평해 버리고 맙니다. 원망해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는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뜻이 이루어질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이시니까, 나는 하나님 아들이 되었으니까, 예수님이 구세주이시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나에게 있으니까 감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범사에 감사했습니다. 잘된 일에도 감사하였고, 잘못된 일에도 감사하셨습니다. 그 분의 감사는 때에 따라 변하는 감사가 아니라, 언제나 변함없는 감사였습니다. 범사에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날마다 언제나 감사하십시오.
그동안 저는 목회를 하고 선교회를 섬기면서 수많은 어려운 일들을 만났습니다. 그 당시에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제가 하나님을 만난 이후 절대적으로 변한 것 한 가지, 그것은 일단 감사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해결되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면 해결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주변의 관심과 사랑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수많은 도움이 있기에 오늘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늘 주님께 감사하는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임석근 목사(서울 담안선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