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참전 比 80대 老兵 "60여년 이 땅을 그리며 살아왔다"
입력 2012-06-22 16:29
[미션라이프] 22일 경기도 고양시 관산동 필리핀군 참전기념비 앞. 60여년 전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싸웠던 필리피노 청년들이 이제는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기념비 앞에 선 6·25 전쟁 필리핀 참전용사 도밍고 에르네스토 타카드(83)씨는 “목숨을 걸고 싸운 땅이었기에 항상 한국을 그리며 살아왔다”면서 “황무지에서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룬 이 나라를 다시 방문해 너무나 기쁘다”고 감격해했다.
타카드 씨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강원도 철원지구 전투에 참가했다. 동료가 쓰러지고 무기를 빼앗긴 채 육박전을 벌이던 그날 밤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는 “그때 쓰러져간 수많은 전우들의 피가 이 나라를 지킨 것”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 1496명의 필리핀 병력이 왜관과 김천, 대구, 임진강변, 철원지구 전투에 참가해 많은 전과를 세웠으며 448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고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기념비를 찾은 11명의 80대 노병과 가족 등 필리핀인 20여명은 이날 오전 경기도 용인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 초청으로 입국했다.
소 목사는 해마다 6·25를 전후해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한국에 초청하고 있다. 올해로 6년째로 그동안 300여명이 다녀갔다. 그가 해외 참전용사 초청을 결심한 것은 2006년 7월 미국 백악관 신우회 회원과 경제인 40여명에게 설교했을 때의 일이다. 설교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질문이 쏟아졌다.
“목사님, 한국은 왜 그렇게 반미 감정이 높은 겁니까. 성조기는 왜 찢고요. 미국이 한국의 평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는데, 저희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당혹스런 질문을 받은 소 목사는 “그것은 미국을 싫어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해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미국인도 모두 한국을 좋아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안다. 그러나 한국사람 대부분은 미국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적잖은 충격을 받은 소 목사는 2007년부터 매년 미국 참전용사 초청 행사를 시작했고 기도회를 열어 한·미 우호 증진과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고 있다.
참전용사들은 이날 기념비 방문 이외에 필리핀 결혼이주민 출신 첫 국회의원인 이자스민 의원을 만나기 위해 국회를 방문했다. 24일에는 새에덴교회에서 한국전쟁 기념 및 한·미우호 증진을 위한 예배를 드린다. 28일까지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과 서울 합정동 양화진 선교사 묘역, 평택 해군2함대과 천안함, 판문점 등을 방문한다.
참전용사 벨렌 식스토 파울리노(85)씨는 “오랫동안 그리던 옛 전우(戰友)의 흔적들을 만나 감격스럽다”며 “이제야 전우를 잃은 아픈 상처를 훌훌 털어 버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