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화 日, 동북아 핵경쟁 부추기나

입력 2012-06-21 19:09

일본 정치권이 자국민들도 모르게 원자력 기본법에 ‘안전보장 목적’이란 문구를 삽입해 핵무장의 길을 열어 놓으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이는 자국의 ‘비핵화 3원칙’을 깨는 동시에 ‘북핵 6자회담’ 당사국으로서의 입지를 좁혀 동북아 핵 경쟁을 부추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물론 관련 조항 삽입만으로 일본의 핵무장이 당장 현실화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핵무장을 위해서는 평화헌법 9조1항의 군사력을 영원히 방기한다는 전수방위 시스템을 바꿔야 하지만 최종 합의까지 이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문제는 일본 안팎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우선 일본 내 보수 우익 인사들의 핵무장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은 “강한 일본을 만들기 위해서는 핵무장이 필요하다”고 말해왔다. 일본 우익 원로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도 지난 1월 인터뷰에서 “신당에 참가한다면 핵무기 모의실험을 제창하는 것이 조건”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여기에 최근엔 평화헌법 개정 주장까지 무르익고 있고 지난해 12월 무기수출 3원칙 완화 조치에 이어 자위대의 괌 주둔 계획까지 발표하는 등 군국주의를 의심케 하는 조치들이 강화되고 있다.

대외적으론 지난달 미 하원 군사위원회가 한국 내에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내용이 포함된 ‘2013 국방수권법 수정안’을 통과시킨 것이 일본의 이번 움직임에 빌미를 준 게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원자력 기본법은 1968년 발표한 ‘핵무기를 제조하지 않고, 보유하지 않으며, 도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화 3원칙을 실행하기 위한 최초의 법으로 이 법의 개정은 핵무장 시도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일본은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을 다량 보유하고 있고, 발사체 기술도 뛰어나 법적 토대만 갖춰진다면 바로 핵무장에 돌입할 능력이 있다. 플루토늄의 경우 핵폭탄 5000개를 만들 수 있는 30∼50t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농축 우라늄은 1200∼1400㎏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 보수 정파들이 원전 완전가동 중단에 강력히 반대해 온 것도 핵무장에 대비해 플루토늄의 양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차원이다.

일본 내에서조차 반대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사안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일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인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등이 창설한 지식인 단체 ‘세계평화 호소 7인 위원회’는 지난 19일 “실질적인 (핵의) 군사이용의 길을 열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면서 “국익을 해치고, 화근을 남겼다”는 내용의 긴급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동훈 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