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프랑스 종군기자들의 한국전쟁 취재기… ‘한국전쟁통신’

입력 2012-06-21 18:35


한국전쟁통신/세르주 브롱베르제 엮음/눈빛

6·25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1950년 8월, AFP통신사 사장 모리스 네그르는 프랑스 파리 사무실로 서른 살 미만의 기자 셋을 부른다. 앙리 드 튀렌, 필리프 도디, 장 마리 드 프레몽빌이 그들이다. 네그르가 불쑥 “한국에 가고 싶지 않나”라고 묻자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렇다고 대답한다. “좋았어, 그러면 내일 아침에 당장 떠나라고. 팬아메리칸 비행기에 자리를 잡아 놓겠어.”

세 사람은 한국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하는 동안 ‘삼총사’로 불렸다. 이듬해 1월, 파리 샹젤리에 로터리에 자리 잡은 ‘르 피가로’지의 사장 피에르 브리송은 기자 세르주 브롱베르제에게 당장 한국으로 날아가 전쟁을 취재하라고 지시한다. 삼총사는 1950년 9월 서울 수복 직후부터 전선을 넘나들며 취재를 시작했고, 브롱베르제는 4개월 뒤에 이들과 합류한다.

“내 눈은 이미 이 거대한 궁지에서 매일 되풀이되는 구경거리에 무뎌졌다. 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피란으로 바짝 마른 아이들의 얼굴, 포기한 군중을 플랫폼에 남기고 만원열차가 떠난 뒤, 이제 곧 다시 길을 걷다 탈진해버릴지 모르는 말없는 가족들을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72쪽)

이 책은 1951년 파리의 르네 쥘리아르 출판사에서 출간한 ‘한국에서 돌아오다’를 번역한 것이다. 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간 이들 네 사람을 대표해 브롱베르제가 엮은 종군 취재기지만 본문의 글이 누구의 것인지 밝히지 않고 있어 다소 아쉽다. 하지만 전쟁 발발 초기의 급박했던 모습이 저널리스트 특유의 사실주의 기법으로 생생하게 적혀 있다.

“그런데 서울은 황량해 보인다. 사람들은 서로 믿지 못하고 말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들은 시내에서 3천여 명의 희생자를 낸 폭격을 매우 겁내고 있었다. 주민의 3분의 1은 ‘양민의 잔인하고 무모한 희생’에 항의하고 있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유엔군을 향한 이런 시위에 놀라고 있다.”(105쪽)

네 사람은 1951년 프랑스에서 그해 가장 뛰어난 기록문학에 수여하는 ‘알베르 롱드르 상’을 받았다. 한편, 이 책의 서두엔 6·25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활동했던 영국 사진가 버트 하디의 전쟁 시기 사진이 실려 있다. 모두 11점으로 ‘눈빛 아카이브’가 소장한 원본 사진들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