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서종로 (15·끝) 거듭난 삶의 소명 “섬김·나눔으로 땅끝까지 복음을”

입력 2012-06-21 10:10


2005년 들어서 이상하게도 마음속 한 구석이 계속 묵직했다. 장홍수 목사님의 소천에 따른 후유증인가 싶어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거니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알리시고자 하는 뜻이 있었다. 어느 날 기도를 하는 중에 하나님은 심한 책망을 쏟아놓으셨다. “네 이웃이 곁에서 굶어죽고 있는데 너희는 잘 먹고 잘 사느냐”는 또렷한 음성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저녁 TV에서는 어렵게 살아가는 독거노인들에 관한 특집 프로그램이 방영됐다.

다음날 나는 교회로 장동신 목사님을 찾아가 쌀 나눔 운동을 하자고 제안했다. 내가 어떻게 해서든 2억원을 마련해 헌금하겠다는 말도 전했다.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준비를 하고는 8월부터 ‘사랑의 쌀 나누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나눔을 주는 쪽이나 받는 쪽에 문제가 발생해 자주 삐걱거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질서가 잡혀갔다.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이 운동은 신림제일교회의 예수 사랑 실천의 한 축이 됐다. 무엇보다 이 운동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 수백 명에 이른다. 그리고 나아가 급식을 하지 못하는 초등학생들을 지원하고 있기도 하다.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께선 베드로에게 그물이 찢어지도록 물고기를 담아주신 것처럼 우리의 작은 그물에도 한 가득 물고기를 채워주셨다.

내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또 하나 열심히 하는 게 있다. 내가 장애인이기 때문인지 언제나 어렵게 생활하는 장애인들의 처지가 안타깝다. 무엇보다 교회와 성도들부터 장애인을 바라보는 인식을 바꾸도록 하기 위해 힘을 쓴다. 그런 차원에서 나는 1992년 경기도 안양의 희망선교회에 발을 들여놓으며 장애인 사역을 시작했다. 2005년에는 한국달리다굼장애인선교회의 이사장을 맡아 이 사회를 향해 장애인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쓰고 있다. 앞으로도 나는 이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2급 장애인인 내가 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지정해주신 길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연재를 이어가면서 내가 하나님께 잘못한 데 대한 많은 고백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가장 마음에 켕기는 게 있다면 그건 선교와 전도다. 나름대로 한다고 해왔지만 늘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신 주님의 지상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일종의 자책감을 떨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좀 더 분발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나름대로 선교와 전도에 대한 나름의 주관을 갖게 됐다. 요즘 기독교계에서는 갖가지 이름의 전도법이 유행하고 있지만 나로선 그 무엇보다 중요한 원칙이 있다고 생각한다.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삶으로 전해지는 복음이 수십 수백 마디 말보다 믿지 않는 이들의 마음속 깊이 파고든다는 사실을 확인해왔다.

나는 가끔 교회들로부터 간증 요청을 받는다. 그러면 내 인생 이야기와 함께 예배와 헌금, 구제와 나눔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터득한 실질적인 전도에 관한 이야기를 해준다. 그러면 고맙게도 많은 이들이 호응한다.

나는 내가 살아온 과정을 돌이켜보면 감사한 중에도 두렵기도 하다. 오래 전에 죽었어야 할 사람이 이렇게 은혜를 누리며 살고 있으니 꿈같기만 하다. 그러나 우뚝 서 있는 내 교회당의 십자가와 언제나 기쁨과 행복을 주는 가족과 믿음의 형제들이 내가 누리는 축복들이 엄연한 현실임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지금까지 걸어온 대로 땅 끝까지 함께 걸어가자는 주님의 음성도 듣는다. 그러면 나는 고백한다. “아! 거룩하신 주 하나님, 제 잔이 넘치나이다.”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