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김영석] 486세대의 정치 효능감

입력 2012-06-21 18:24


“금단의 영역이 수면 위로 떠올라…우리 사회의 새로운 활력소로 만들 필요”

“정의감에 불타는 20대 운동권의 심정으로 열심히 하겠다.”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 “반미가 왜 탄압 대상인가. 진짜 종(머슴)은 종미에 있다.” 종북 논란의 핵심 당사자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국회에 입성한 후 한 말들이다. 그는 주체사상을 이념적 토대로 삼았던 80년대 학생운동권의 핵심인물로 알려져 있다.

우리 사회의 종북 문제는 누구나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금기 영역이다. 사회적 갈등의 근원이 대부분 이것과 관련되어 있음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잘못 말했다가는 시대착오적 색깔론자의 오명과 함께 뭇매를 맞기 십상이어서 쉬쉬할 뿐이다. 그런 금단의 성역이 수면 위로 노출되면서 이제 모든 사회구성원의 관심사가 되었다.

최근 종북 논쟁에서 두 가지 현상이 특별한 관심을 끈다. 첫째는 종북 논란 당사자들이 대부분 40대에 편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관련자들의 말투와 그 내용을 볼 때 30여년 전인 80년대 초반 신봉했던 급진적 사상과 신념을 지금도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60년대에 태어나서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세대를 얼마 전까지는 ‘386세대’라고 불렀지만 이제 대부분 40대가 되면서 ‘486’세대라고 부른다. 이 세대는 매우 진보적이고 탈권위적이며 이념에 관대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관심 대상이다. 이념적 진보성이 강하고 세대별 인구분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들이 한국 정치 판도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한국의 40대가 강한 정치적 진보성을 지니게 된 데는 그들의 독특한 정치적 경험이 배경에 있다.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20대를 정치적 우여곡절이 무척 많았던 80년대에 보내다 보니 다른 세대와 구분되는 정치 이념을 형성한 것이다. 이들은 광주민주화운동이나 6·29선언 등 굵직한 정치적 사건들을 직접 보거나 체험하였다. 또 군부 독재에 대한 저항은 진보적 가치를 과감하게 수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억압적 정치체제를 자신들의 손으로 타파하면서 변화와 개혁에 대한 강한 정치 효능감을 형성하였다.

일부 극단적 종북주의 성향의 집단이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제외한 다른 486세대의 정치적 효능감은 무기력과 타성에 젖어 있던 기존의 우리 사회에 새로운 자극제와 활력소가 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가치나 이념이 보수화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 사회의 종북 논쟁을 보면 이런 상식이 맞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젊은 시절 가지게 된 정치적 가치나 신념을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도 그대로 지니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심리학자인 폴 아브람슨은 연구에서 미국의 젊은이들이 청년 시절 형성한 급진적 정치 이데올로기를 일생 동안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1960년대 중반 버클리대는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운동의 메카였다. 그때 핵심적 역할을 했던 수백명의 리더들을 25년 후 다시 추적해 그들의 정치적 신념을 조사해보니 젊은 시절과 비교해 큰 변화가 없음을 발견했다. 오히려 세월의 변화와 함께 더 공고해지는 것이다.

정치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선택적 주의’와 ‘확증 편향’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일단 어떤 대상에 대한 가치나 신념을 확고하게 갖게 되면 바깥세상을 볼 때 자신의 그런 믿음에 일치하는 정보에만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또 접하는 정보도 자신의 믿음을 지지하는 쪽으로 해석하는 확증 편향을 보인다.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만 보고 싶어 하고 또 자신의 생각이 옳음을 증명하는 정보에만 관심이 쏠린다는 말이다.

6·25전쟁을 체험한 70대 이상의 세대에서도 이런 성향을 발견할 수 있다. 486세대와 다른 점은 방향이 정반대라는 것뿐이다. 경험에 의해 형성된 이념은 여간해서 바뀌지 않는다는 또 다른 사례다. 종북 이념의 편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그것은 굴곡이 심했던 한국 현대 정치가 그 여정 속에서 한번은 맞닥뜨려야 하는 숙명이다. 시간만이 해결해 줄 것이다.

김영석 연세대 교수 언론홍보영상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