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고승욱] 8인의 헌법재판관

입력 2012-06-21 18:23

대한민국 헌정사에 헌법재판소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60년이다. 4·19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자 허정 과도정부는 곧바로 개헌에 착수했다. 새 헌법은 그해 6월 15일 국회를 통과했다.

제2공화국 헌법은 대통령제를 의원내각제로 바꾼 점만 부각돼 있다. 하지만 83조에 헌법에 관한 최종적 해석권을 헌재가 갖는다는 내용이 담겼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물론 이 조항은 제2공화국과 함께 사라졌다.

헌재가 실제로 세워진 것은 88년이다. 87년 ‘호헌(護憲) 철폐’를 외쳤던 6월 항쟁으로 개헌이 이뤄졌고, 헌재의 구성과 권한을 명시한 현행 헌법이 88년 2월 25일 시행됐다. 4·19에 이어 6월 항쟁까지, 헌재의 존재 자체가 독재와 싸워 얻은 전리품이다.

현행 헌법은 정의롭지 못한 권력에 저항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개헌 당시 시대정신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할 의무가 있다’는 헌법 10조,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않은 이유로 경시되지 않는다’는 37조가 대표적이다.

헌법 111조 1항도 중요하다. 여기에는 헌재가 다루는 업무의 범위 속에 ‘헌법소원’을 담았다.

헌법재판소법은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해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침해받은 경우 헌재에 헌법소원을 낼 수 있다’고 명시해 헌법을 뒷받침했다. 헌법소원은 시민의 권리를 최고로 보장했던 1919년 독일 바이마르 헌법에서 확립된 개념이다.

누구나 부당한 공권력에 대응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고, 그 장치가 바로 헌재의 헌법소원심판권이다. 최근 대법원과의 갈등이 부각되면서 헌재의 존재 자체를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지만 헌재가 갖는 상징적 의미는 가볍게 볼 수 없다.

1년을 끌어온 헌법재판관 공백 상태가 여전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7월 조대현 재판관이 퇴임한 뒤 헌재는 지금까지 8인 재판관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 2월 국회에서 조용환 재판관 선출안이 부결되면서 국회는 이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불과 25년 전에 많은 국민이 독재에 저항하며 어렵게 만든 제도적 장치인데 국회는 그 의미를 제대로 이어받지 못한다. 헌법 111조 2항에는 ‘헌재는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한다’고 분명하게 명시돼 있다. 국회가 지금 헌법을 쉽게 생각하고 있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