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오직 땀으로… 이용훈 화려한 재기

입력 2012-06-20 19:15

태국 푸켓으로 간 달콤한 신혼여행. 가방엔 튜빙밴드 등 운동기구가 들어 있었다. 어깨 수술을 받은 뒤라 재활 훈련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새 신부는 정성껏 남편의 어깨를 마사지했다. 남편의 재활을 위해 마사지를 배운 터였다. 프로야구 롯데 투수 이용훈(35)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게 2006년 겨울의 일이다. 2012년 여름, 불굴의 의지와 아내의 사랑으로 이용훈이 화려하게 재기하고 있다.

◇2군에서 마음을 비우다=지난 두 시즌 무승을 기록했던 이용훈은 올 시즌 19일 현재 15경기에 출전해 6승 2패 1세이브를 기록 중이다. 다승 공동 5위. 평균자책점은 2.58로 단독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런 그가 지난 시즌을 2군에서 보냈다.

한물간 나이에 2군 생활은 고달프기만 했다. 한숨만 내쉬던 그는 어느 날 벼락을 맞은 것처럼 깨우쳤다. ‘나는 2군 실력밖에 되지 않는다. 현실을 받아들이자.’ 그러자 머리가 맑아졌고, 욕심이 사라졌다. 개인 훈련에 매달리자 예전의 실력이 되살아났다. “시간이 많아 정말 공을 많이 던졌습니다. 2군 생활이 내겐 좋은 경험이 됐습니다.”

이용훈은 원래 강속구 투수였다. 키 1m83에 몸무게 85㎏의 신체 조건으로 154㎞짜리 강속구를 뿌려 댔다. 비결을 물어 봤다. 그는 “어릴 때 어깨를 혹사시키지 않아서”라고 대답했다. 경남중학교 시절 포수였던 이용훈은 고인이 된 손병찬 전 부산공고 감독이 “투수를 시켜 주겠다”고 하자 경남고 대신 부산공고로 진학했다. 투수로 전향한 이용훈에겐 강속구밖에 없었다. 대학 진학 후 패전을 거듭하자 변화구 연마에 매달렸다. 혼자서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커브부터 시작해 슬라이더, 체인지업, 포크볼 등 다양한 변화구를 장착해 ‘팔색조 투수’로 거듭났다.

◇서른다섯 해 만에 꿈을 이야기하다=2011년 9월 17일. 이용훈은 이날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 한화와의 2군 경기서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퍼펙트게임을 달성한 날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날 컨디션은 좋지 않았습니다. 7회까지는 퍼펙트게임을 의식하지 않았는데, 9회가 되니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경기는 제 야구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습니다.”

그 경기 덕분에 그는 1군에 복귀했다.

요즘 그는 기분이 너무 좋아 날아다닐 것 같다고 했다. 올 시즌 몇 승이 목표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그건 가슴 속에 담아 놓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작년에 팀이 2위에 그쳐 아쉬웠는데, 올해엔 1위에 올라 한국시리즈에 직행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아직 체력적으로는 20대 선수들과 겨뤄도 자신 있다는 이용훈. 그는 메이저리그의 놀란 라이언처럼 전설적인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의 등번호는 라이언과 같은 34번이다.

김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