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의 바둑이야기] 진정한 승부사

입력 2012-06-20 18:28


“승부하는 사람으로서 털어놓는 건 의미 없다고 다짐해왔지만…”이라는 운을 띄우며 최철한 9단은 조심스럽게 마음을 열었다. 지난 11일 한국기원 바둑TV 스튜디오에서 펼쳐진 제8회 한국물가정보배 본선리그에서 최철한은 시간패를 당했다.

바둑은 최철한이 한집 반에서 반집은 이기고 있는 종반의 상황. 계시원은 마지막 초읽기를 불렀고 아홉하는 순간까지 착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계시원 역시 당황한 듯 몇 초가 지나고 마지막 열을 부르며 시간패가 됐다. 하지만 열을 부른 후 최철한은 돌을 착점했고 그때까지도 자신이 시간패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잠깐의 정적이 지나 상황을 파악한 최철한은 “시간을 잘못 들었어요”라며 특유의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돌을 거뒀다.

대국이 끝난 후 인터넷은 시끄러웠다. 계시원 교육부터 기사들의 대국 습관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들이 게시됐다. 베팅과 관련된 사람들은 화를 내며 안 좋은 말까지 했다. 심지어 상금이 작아서 열심히 두지 않았다는 낭설로 몸살을 앓아야 했다. 그리고 다음날 한 인터넷 게시판에 글이 올라왔다. ‘최철한 9단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최철한이 직접 글을 올렸다.

최철한은 초등학교 시절 큰 열병을 앓아 오른쪽 귀의 청력을 잃었고 왼쪽은 정상 청력의 70∼80%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대부분의 큰 승부들은 TV중계를 위해 스튜디오에서 많이 치러진다. 하지만 스튜디오에서는 카메라 중심의 좌석 배치가 이미 돼 있기 때문에 흑과 백의 선택에 따라 자리가 결정된다.

이번처럼 계시자가 오른쪽에서 초읽기를 하는 상황이라면 최철한의 왼쪽 청력으로 정확하게 소리를 듣기는 어렵다. 일분일초를 다투는 바둑의 승부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보여줘야 하는데 초 읽는 소리까지 듣기 위해 집중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최철한은 지금까지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승부하는 사람으로서 털어놓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다짐해왔다. 늘 초읽기에 부담은 가졌지만 자신의 능력이기 때문에 감당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생기고 많은 악플이 올라와 마음이 아팠다. 승부사로서의 이런 현실이 너무 괴롭고 상처받는 가족에게 미안해 15년 넘게 마음에 담아두었던 아픔을 이야기했다.

최철한은 어떤 특혜도 바라지 않는다. “제게 주어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더 좋은 바둑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항상 저를 아끼고 응원해 주시는 바둑 팬들께 감사드립니다”라는 말로 마지막 인사말을 맺었다. 자신의 아픔 또한 자신의 능력이 될 수 있다. 그것을 원망하고 포기하기보다는 그것 또한 나의 능력임을 믿고 꿋꿋하게 견뎌 나가는 최철한은 진정한 승부사이다.

<프로 2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