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옌볜 ‘이태백’
입력 2012-06-20 18:33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는 지린성 동부에 위치한 4만3474㎢의 지역이다. 원래 간도(間島)로 불리던 곳으로, 1869년 함경도 대흉년으로 조선인들이 이주하기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에 이주자가 늘어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됐다. 1952년 9월 3일 조선족자치구로 지정됐고, 55년 12월 자치주로 승격됐다.
현지 신문인 연변일보가 최근 ‘이태백(20대 가운데 태반이 백수)’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젊은이들이 1500∼2000 위안(28만∼37만원)의 월급을 하찮게 여겨 직장을 구하지 않고, 어쩌다 취직을 해도 쉽게 사표를 던지고 실업자로 돌아간다. 씀씀이도 헤퍼 유명 브랜드 의류와 신발만 찾고 6000 위안이 넘는 스마트폰도 스스럼없이 산다는 게 보도 내용이다.
원인은 한국에 나가있는 부모의 송금이다. 이들이 매달 보내는 3000∼4000 위안은 중국 대졸자 초임보다 많다. 부모들이 고향에 혼자 남겨두고 온 자식이 안쓰러워 허리띠를 졸라매고 돈을 모아 보내다 보니 빚어진 현상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옌볜 조선족이 보내는 외화는 연간 10억 달러(약 1조1600억원)를 넘어 지역총생산의 33%를 차지한다고 한다.
1990년 대 이후 조선족 동포들의 모국 취업으로 부가 유입되면서 생긴 부작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안마시술소 노래방 룸살롱 등 향락 산업이 독버섯처럼 번성하면서 민족 고유의 전통문화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가난하지만 인정이 넘치던 공동체 분위기도 사라지고 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인구 유출이다. 한·중 수교와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한국은 물론 칭다오 상하이 등 대도시에서 한국 관련 일을 하기 위해 노동인구가 대거 이탈하면서 1996년부터 조선족 인구가 계속 감소하고 있다. 현재 조선족 인구는 한국에 나와 있는 이들까지 합쳐도 82만명으로,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6.7%에 불과하다. 이대로 가다간 소수민족 비율 30%를 채우지 못해 자칫 자치주 지정이 취소될 수도 있다고 한다.
노동력의 70∼80%가 외지에 나가있다 보니 농촌 해체 현상이 나타나고, 조선족학교들이 잇따라 문을 닫고 있다. 이제 한국에 나와 있는 조선족의 처우 문제뿐 아니라 옌볜자치주의 와해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지역에 한민족 정체성이 유지되도록 민족교육을 지원하고, 공동체가 붕괴되지 않도록 산업을 일으키는 방안 등에 눈길을 돌려야 할 때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